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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12. 2021

37.7도는 정상입니다

신종플루 잔혹사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이제까지 총 세 번의 감염병 대유행을 겪었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그중 신종플루는 지금은 그저 A형 독감일 뿐이다. 2009년 신종플루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당시 근무했던 곳은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어도 전체 학생 수 1,000명이 채 안 되는 크지 않은 학교였다. 보건 교사도 따로 없어서 학생들이 아프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조퇴를 시키고, 병원 개별 방문을 권유하곤 했다.


   신종플루 상황이 터졌을 때 중학교는 체육대회를, 고등학교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행사는 잠정 연기하거나 취소하라는 공문이 내려온 상황이었다. 중학생들은 체육대회를 취소하고 싶지 않았는지, 자신들이 손도 잘 씻고 규칙도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놀랍게도 체육대회와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명의 신종플루 감염자도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다음날부터 중학교에 신종플루 확진자가 한두 명씩 나오더니 며칠 후에는 확진자가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학교와 같은 중정과 급식실을 사용하는 고등학교에도 비상이 걸렸다. 급하게 담임선생님들에게 체온계를 배부하아이들의 체온을 재도록 했다.


   신종플루 확진자 판별 기준은 코로나보다는 조금 높은 37.8도였다. 학생들의 체온이 37.8도가 넘으면 귀가시키고, 병원에 가서 신종플루 진단을 받도록 했다. 그러면 병원에서는 해열제나 타미플루를 처방해 주었고, 5일간 등교 중지를 시켰다.


   중․고생이 어떤 아이들인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기발함이 넘쳐나는 아이들이다. 오죽하면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중2병 때문이라고 할 정도다. 여름에 결막염이 유행하면 쉬고 싶다며 결막염 환자인 친구와 눈을 비벼대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런 아이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 도서관도 아이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보니 신종플루의 전염을 막기 위해 나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현지가 도서관에 오자마자 대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샘, 저 체온을 쟀는데요.”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어. 그런데...?”


“37점~ ... 7도래요.”

“휴. 놀랬잖아. 그건 정상이야. 신종플루 아니야.”


“37.7도인데요? 금방 37.8도가 될지도 몰라요.”

“응. 아니야. 완.전.정.상!!”


“뭐예요. 왜 자꾸 도망가세요. 신종플루 아니라면서요.”

“그래도 열이 나는 거잖아. 난 소중하니까. 거기서 말해~”


“에이~ 저 신종플루 아니에요.”

“알지~ 잘 가~~ 오늘은 그만 와~”


   현지와 한참을 웃었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0.1도가 모자랐던 현지는 집에 갈 수 없었다. 물론 당연히 신종플루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해의 늦가을과 초겨울은 신종플루로 인해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계속되었다.


   일단 37.8도가 넘으면 바로 귀가할 수 있고, 집에서 5일 정도 쉴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다양한 꼼수를 찾기 시작했다. 교실에서는 이런 사례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체온을 쟀더니 한 아이가 체온이 80도가 넘게 나왔다. 너무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결과였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물었다.


“80 도?? 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그 아이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얘요, 아까부터 교실 라디에이터에 귀 계속 대고 있었어요.”

“맞아요. 이러면 집에 갈 수 있다면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사람이 열이 80 도면 이미 사망이야.”


   아이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 번은 도서관에 찾아온 주연이의 얼굴이 유난히 빨갰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혹시 열이 나는 건가 싶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주연이는 배시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열나는 것 같아요?”

“응. 체온 재봐야 하는 거 아냐? 담임선생님한테 말씀드려.”


“아싸~ 성공!”

“뭘? 뭐가 성공이란 거야?”


“샘 우리 담임한테 말 안 한다고 약속해 주실 수 있어요?”

“뭘 말 안 해야 하는데?”


“사실은 저 볼 터치를 얼굴에 발랐거든요. 티 안 나죠? 진짜 열나는 것 같죠? ”

“야! 그런다고 속으시겠냐? 체온 재면 정상일 텐데.”


“신종플루까지는 아니고 그냥 조퇴만 할라구요.”

“으이구! 빨리 지워.”


“모른 척해 주세요. 쉿!”


   그 외에도 열을 올리기 위해 자기를 사정없이 때리는 아이, 일단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 신종플루 확진받은 친구와 온 얼굴을 비벼대는 아이 등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한바탕 학교를 휩쓸고 간 신종플루는 그다음 해 여름이 되어서야 조금씩 잠잠해졌다.


   세 번의 감염병 위기를 겪으며 깨달았다. 학생들의 건강과 방역을 위해 애쓰시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도 계속 경계를 늦추지 않고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등을 잘 지켜야겠다고 다짐한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실 보건 선생님들과 학교의 모든 구성원분께 무한한 감사와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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