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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Apr 09. 2024

봄이 내려앉았다

거리에 온통 봄이 내려앉았다. 여기저기 앞다투어 화사하게 피던 각종 꽃들은, 짧은 시절을 화려하게 누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꽃비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활짝 피어났다가 빠르게 져버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란다.


   꽃 화 花, 춤출 무 舞.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꽃잎들이 내게는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 퇴근길 자동차 위에, 산책길 곳곳에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꽃잎들의 흔적을 눈으로 좇아 사진으로 남겨본다. 봄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담아놓고 들으면서 꽃잎 사이로 파릇파릇 피어나는 연한 초록 잎들의 자태를 넋 놓고 감상해 본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한 과목의 교수는 몹시도 무감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칼 같은 단호함에 서릿발 같은 불호령까지 더해지니 강의시간의 공기는 그야말로 호흡곤란 수준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화창한 4월 이맘때쯤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강의실은 한겨울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과제를 써 내려가던 학생들을 두고 창밖을 한참 내다보던 교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냥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졌다. "오홍홍. 봄은 봄인가 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투와 감상에 학우들은 몰래 '왜 저래?' 하는 눈빛을 교환했다.


   교수는 머쓱했던 듯, 과제물을 쓰는 대로 빨리 제출하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강의가 끝난 후 친구들은, 저렇게도 매사에 무감한 눈의 여왕 같은 사람도 감상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것이 봄인가 보다며 한참을 웃었다. 그날이 그 교수가 감정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던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직사각으로 날카롭게 그어진 아직은 차가운 건물 안에서 여전히 남은 찬 공기를 몰아내고 햇빛이 비추인다. 이제야 겨우 히터나 난방 없이도 손이 시리지 않다. 따뜻한 온기를 지닌 볕은 점점 그 화력을 더해가며 얼어붙은 공기를 녹이며 덥히고 있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여름이 도착하게 될 것 같다. 그전까지는 남은 봄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바쁘다고 모른 척하다가는 봄은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 버릴 테니까. 후회하지 않도록 이른 봄과 늦은 봄을 모두 충분히 누려야겠다. 그 후에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게 될 용기가 제대로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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