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그해, 2002년이었다. 몇 달을 방황하다 겨우 얻은 공공기관의 몇 개의 계약직을 거치고, 지금 일하는 교육기관의 연계 도서관 쪽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2004년이니 올해가 학교 경력으로도 꽉 채운 20년을 맞이했다. 지난 20년간 나이가 든 탓도 있겠지만, 최근 5~6년 들어서는 꾸준히 몸의 잔고장과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원이 많은 공공도서관에서는 분야를 나누어서 하는 일을, 학교도서관에서는 사서교사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도서관의 업무 특성상 책을 나르거나 옮기거나 제자리에 꽂고 정리하고 점검하는 일이 거의 매일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은 아무리 많아도 몇 천여 권을 넘지 않는데, 학교도서관의 장서는 단위 자체가 다르다. 경기도 관내 학교도서관만 따져도 최소 1만 5천 권에서 최대 3만 권에 육박한다. 평균 2만 3천 권의 책은 제 발로 걸어갈 수 없기에 결국은 업무 담당자인 사서교사의 손이 필요하고, 그렇게 신체를 갈아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처음에는 가벼웠던 손목터널증후군이 만성이 되고, 거북목과 그로 인한 어깨 통증이 나날이 심해졌었다. 주로 종이를 만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손은 쉽게 건조해졌고, 팔 근육들은 잔뜩 뿔이 나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시위를 하기도 한다. 특히 목에서 어깨, 팔, 손으로 이어지는 라인으로는 병명도 기억하기 힘든 각종 질환이 포진해 있다. 이미 통증이 한계치에 온 오른손, 오른팔을 무리하지 않으려다가, 이제는 왼손, 왼팔에 반대편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건초염, 방아쇠수지증후군, 손목터널증후군, 각종 봉와직염 등의 증상이 생겨버렸다. 결국 어깨와 팔을 무리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하체의 힘을 컨트롤하는 코어의 힘이 가장 중요해진다.
인간의 신체 중 코어가 되는 부분은 바로 허리인데, 그렇게 계속 혹사되면서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하던 허리 역시 디스크 돌출 위험이라는 시한폭탄 앞에 놓이게 되었다. 허리에서 시작된 통증은 다리를 타고 내려가 발가락 끝까지 찌릿찌릿하게 전해지는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상하게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가끔은 마치 바람이 든 것처럼 단단하던 무언가 헐거워진 느낌이다. 조금 무리했나 보다 하고 손 찜질도 하고 무거운 책들 움직이는 것도 미루고 쉬어주었는데도 통증은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가까운 정형외과를 찾으려 했는데, 류머티스 관절염의 경우에는 내과가 훨씬 더 정확하다고 해서 지인의 추천으로 한 병원을 가게 되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확인한 손가락 관절의 상태는 신기했다. 손가락 마디마디의 뼈끝이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처럼 꽤 투명해져 있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바람이 든 것 같다던 느낌이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나 보다.
의사 선생님은 내 손이 퇴행성관절염 1.5기 정도의 상태라고 했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을 보호하고 있는 연골의 점진적인 손상이나 퇴행성 변화로 인해 관절을 이루는 뼈와 인대 등에 손상이 일어나서 염증과 통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관절의 염증성 질환 중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다. 더욱 걱정을 불러일으켰던 류머티스 관절염의 여부는 피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해서 채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겉으로는 덤덤한 척했지만 사실 너무 충격적이었다. 40대밖에 안 되었는데 퇴행성관절염이 손가락 마디마다 찾아오다니, 한번 발병하면 완치란 없고 꾸준한 관리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거기에 의사 선생님께서 매일 한 알씩 먹을 수 있는 소염진통제를 2주분 정도 처방해 주셨다. 매일 마디마디 바람이 들어 시리던 손가락이었는데, 약을 먹으니 통증의 정도가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며칠 후, 피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다행히 류머티스는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무슨 일이든 일단 맡으면 대충 하고 넘기지 못하는 내 성격 탓에 애먼 몸만 고생시킨 것 같아 한편으로 몸에게 미안하다. 점점 더 꼼꼼히 관리하고 체크해야 할 건강 적신호들이 늘어간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남은 수명 동안에 내내 아프다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을 거다.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삶의 질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고 유지할 수 있는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정신 차리고 관리해서 각종 통증과 염증에서 온전한 내 몸의 자유를 되찾고 싶다. 귓가에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의 후렴구 가사가 맴돈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