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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7. 2018

다들 그렇게 산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82년생 김지영

  모 온라인 서점의 행사로 미뤄 두었던 책 <82년생 김지영>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절친한 삼총사 중 둘이 릴레이로 넘겨 주어 서로의 감상평도 비교해 보며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게 되어 참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이 도서가 포함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다 읽어보아야지 하면서도 기회를 만들지 못했었는데,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같은 시리즈 내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만큼이나 픽션이기보다는 삶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듯한 책이였다. 최근 몇 년 간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나쁜 페미니스트' 등을 선발대로 페미니즘 도서가 당당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82년생 김지영' 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일까, 그 어떤 여성문학과 페미니즘 도서보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이 스쳐 갔다. 육아에 전념하고자 교사 일을 그만둔 우리 엄마부터, 아이에게 미안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규모 있는 클라이언트사의 대리님.  그리고 나를 포함해 김지영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양가 부모님에 만류에도 불구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직장 동료. 극단적으로는 시댁과의 갈등으로 이혼을 결심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익명 글쓴이. 한국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던 친구. 그런데 이 소설에서도 다뤄졌듯 한국 남자들 중에서도 한국 여자랑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다. 다른 어느나라에서도 쓰지 않는 모국어를 공유하는 이들끼리, 어쩌다 이렇게 소통이 어려운 적이 되어 버렸을까. 어쩌다 차라리 외국어를 배워서라도 '이 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이라는 심정으로 짝을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까?


 누군가는 남자들이, 여자들이, 어른들이 여자에게 해 왔던 폭력과 차별에 대해 이제 갚아주는 시대가 도래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오래 기울어 있던 저울이 수평을 맞추기 위해 크게 흔들리는 혼돈의 시대라고도 말한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고정관념을 주입당해 왔기에, 페미니즘이 가장 활발히 화두에 오르는 우리 세대에서도 종종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유리천장에 대해 불평하다가도, "결혼이라도 해야 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하지" 라는 동료의 말을 들을 때, 또래의 주변 사람들과 소개팅 등을 이야기할 때 "그래도 나보다는 경제적이나 학력이나 뭐라도 더 나은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 한 켠이 조금 불편해진다.

 남성들의 경우도 맞벌이를 하자면서도, 집안일이나 육아는 아내를 '도와주겠다'고만 해도 애처가이자 훌륭한 신랑감으로 평가 받는 게 아직은 여론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도서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부키)>는 여성들의 가사 노동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던 주류 경제학의 허점을 지적한 바 있다. 애덤 스미스야 몇 백 년 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쳐도, 2018년 현재도 갈 길이 너무 멀다니!




 이런 좌절감이 들 때면, 나는 방향성을 생각하며 위로를 얻으려 노력한다. 최근 출간된 <여자라는 문제 (재키 플레밍, 책세상)> 은 장 자크 루소, 다윈 등 시대의 천재로 기록된 이들의 발언과 연구들의 전제에 담긴 여성 혐오의 역사를 말한다. 다윈은 "여자들의 성취는 하잘것없으니 이는 곧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증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때에 비하면 여성 혐오가 사회 문제라는 인식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진보하고 있다는 소박한 믿음이 생겨난다.


 '82년생 김지영' 은 아마 그런 점에서 의미가 더욱 깊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당연히 삶이 그렇지 하고 체념할 뻔 했던 이야기를, 묻어둘 뻔 한 흔한 삶을 꺼냈다. 그렇게 오랫동안 당연했던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어쩌면 남녀의 문제만은 아니다. 묵묵히 참으며 제 할 몫을 하는 사람이 최고의 미덕이었던 시대가 끝나야 한다는 목소리들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너만 힘들어? 다들 그러고 살아." 라는 충고를 가장한 폭력에 길들여지지 않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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