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소독할 때 피부조직에 붙어있는 거즈가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던 자그마한 뿔테안경의 간호사가 다른 사람을 부른다. 꿰맨 자리에 거즈가 붙어 소독이 어렵다고 말했는 모양이다. 검은 뿔테안경의 간호사는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내 부어있는 다리 쪽으로 눈길을 보내고 전전긍긍하면 바라보기만 했다. 뒤따라 온 수간호사인 듯 보이는 무표정한 간호사는 내 다리 부위에 식염수를 부었다. 그리고 하나씩 거즈 조각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혈액에 염증 수치가 정상 범위에 가야 나는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틀에 한번 꼴로 소독을 해야 하지만, 자가 소독하는 키트를 사용해서 집에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집에 혼자 있는 아이를 챙겨야 했고, 아직 내 다리는 나을 때까지 한참 동안 걸릴 것 같았기에 퇴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최소한 밥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매번 배달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간병인도 안 쓰던 내가 아줌마를 부르기엔 더더욱 싫으니 어찌할까를 계속 고민만 했다.
아무래도 내가 병원에 계속 있는 것이 나도 식구들도 편한 조치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한 주 더 실밥을 뽑기까지 병원에 있기로 결정을 바꿨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잘한 선택이다. 침대 베드에 누워 간호사들이 와서 소독을 할 때마다 내 다리의 붓기에 대해 한마디씩 말을 건넨다. '다리가 너무 부어 계세요'. '많이 아프시죠?'등등 그들의 말 한마디가 환자임을 알려준다. 욱신거림과 붓기로 모아진 왼쪽 다리의 아픔은 여전히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지만, 수술 후 지난 며칠 동안 통증이 서서히 줄어듦을 느낄 수도 있었다.
삼시 세끼 식판을 병원 복도에 가져다 놓아야 했을 때 다리가 불편한 나를 위해 앞에 입원 중이신 분이 식판을 몇 번 가져다 놓아 주신다. 이 분은 폐렴으로 계속 연신 밤이 되면 기침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약을 드시곤 낮에는 내내 코를 골며 식사때를 제외하곤 낮잠을 주무셨다. 그 옆에 할머니는 고령이셨고,
어느 부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골절로 입원하셨다가 독감으로 다시 하루를 더 입원해 계셨다. 창가에 이 주 동안 입원하는 나 외에 다양한 분들이 입퇴원을 반복했고, 다녀가셨다.
하루는 엑스레이를 찍을 수조차 없는 호흡으로 밤새 보조호흡기를 달고 오셨던 할머니는 몸이 너무 좋지 않으셨고, 심장내과병원으로 전원을 하셨다. 심장내과 있는 큰 병원들은 의료 붕괴로 입원을 받아주지 않은 것 같고, 결국 지역도 낯선 먼 병원으로 전원하시게 되었다. 나 또한 이번 수술할 병원을 찾을 때 큰 병원에선 수술할 의사가 없어 의료공백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정부의 부재와 의료의 공백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의사가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하다니 어이가 없다.
입원 수속을 밟아준 고마운 친구는 빵과 과일을 사들고 병원에 다시 왔다. 교사인 친구라 방학기간이었고, 잠깐 시간이 돼서 나의 밥그릇 식판도 가져다 놓고 화장실 가는 걸 도와주었다. 특히나 친구랑 아이들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나니, 땀이 쭈욱 나고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만나면 아이들 공부 얘기를 주로 하는데, 이게 또 할 말이 많은 주제라 어찌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 도돌이표 주제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앞으로의 진료와 복직 문제가 나왔다. 아직은 2개월이나 휴직이 남아있었고, 낫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친구는 더 해야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검색을 좀 해보겠노라라고 답했다. 친구는 내게 병가를 권유했다. 사실 남편과 6개월이 더 남은 연수휴직을 이어서 쓸까를 고민했고, 남편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직장에 말하기도 좋고, 깔끔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내게 경력과 월급이 보장되는 병가를 다 쓰라고 했다. 아직 낫지도 않은 다리가 재활을 하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고, 학교를 옮기게 되더라도 날짜가 애매할 것을 이야기했다. 60일 병가라니. ㅠㅠ 거의 몇 번 써 본 적 없는 나의 병가는 늘 한 해가 지나면 없어지곤 했는데, 60일을 다 써도 아픈 거구나 싶었다.
친구가 사준 달지 않은 빵을 먹으며, 커피를 마신다. 병원 1층에 '파마씨에' 라는 이름의 커피숍 커피는 내 입맛에 딱 맞는 커피향과 원두를 사용했다. 친구는 내가 그 커피가 맛있다고 한걸 기억하고 커피도 사다 주었다. 이런 수고로움과 마음 쓰임을 기억했다가 돌려주어야 할 텐데. 이 커피숍은 병원 손님들은 500원의 할인을 서비스로 제공한다. 입원할 땐 몰랐는데 외래를 이용하면서 자주 남편과 커피를 마시러 가게 될 만큼 맛집이 되었다.
쿠키 여러 개를 쿠키 박스에 담아 친구가 건네며 먹고 잘 지내라고 한다. 앞으론 학교 근무에 애들 픽업으로 정신없을 것 같다고. 이것만으로 충분해서 넘치도록 고맙다고 말해주곤 친구를 배웅했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어머님이 오셨고, 동생 내외가 왔고, 동서 내외도 다녀갔다. 아이는 주말에 잠깐 엄마를 보러 왔다. 가장 바쁜 시기에 엄마로서 미안했지만, 아이는 속에 있는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덤덤하게 보이려 애쓰는듯했다.
누워서 편히 베드에 있는 것 같지만, 핸드폰으로 계속 아이의 요구사항을 배달로 채워주고 장바구니를 집으로 보냈다. 핸드폰으로 원격 조정하는 것 같았지만, 핸드폰 하나로 대체할 만한 배달 앱 시스템이 너무나 감사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는 어느 나라를 비교해도 참 편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시켜준 마라탕이 불어서 맛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고맙다.
코로나로 무관중일 때 찍어두었던 연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KBS교향악단의 연주실황이다. 그의 여러 영상 중 아껴두면서 자주 듣는다. 녹음의 질은 아쉽지만 그 아쉬움을 연주로 뚫고 나온 실력을 느낄 수 있다. 거칠듯 강하지만 처연하기도 한 그의 연주는 슬픔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연주는 좋은 곡이 거의 다지만, 피아니스트가 말아주는 해석의 배에 올라타면 그 진가를 더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