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슈만의 다비드동맹곡(Davidsbündlertänze), 작품번호 6

by 포레


900%EF%BC%BF20250127%EF%BC%BF073058.jpg?type=w773 퇴원 기념 꽃다발을 보니 눈물이 쭉.


퇴원하고, 휠체어 생활을 시작했다.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식탁의 위치를 옮겨 안방에서 거실까지의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이전에 식탁은 주방과 냉장고, 커피를 마시고 티브이를 보는 위치에 맞췄다면, 이후엔 휠체어를 쉽게 움직이는 것에 모든 걸 맞췄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일주일은 발을 디딜 수 없으니, 휠체어와 목발을 지탱하고 화장실과 욕실의자 앞까지 가는 활동만 겨우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휠체어의 편리함이 익숙했다. 후진하는 건 미숙했지만, 목발 때문에 불편했던 손목에서 해방시켜주었다. 손목의 시큰거림을 손목 보호대로 조금 덜해보려고 했지만, 빼고 끼고를 반복하는 것도 싫었고, 휠체어를 움직이는 아이가 신기하다며 타보는 걸 보고 아직도 순수하구나 싶었다. 휠체어를 활용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너무나 알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휠체어로 가능한 일인가 싶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잠깐이지만, 실내용 휠체어는 내 두 손목에 자유로움을 주는 운송수단이었다.


집에 오니, 가족들이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여러 집안일들을 보는 게 좀 괴롭긴 했다. 다행히 설을 낀 남편의 열흘 휴가 덕분에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을 써서 냉장고 청소와 빨래 그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게 가족 모두 편한 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가 강하게 반대를 한다. 병원에서의 간병인을 거부했던 나처럼.


아이는 자신의 방과 옷가지를 외부 사람이 만지는 게 싫고(무수리 팔자인가;;), 평상시에도 자신은 깨끗하게 쓰고 있으니, 굳이 외부인이 청소를 하러 와야만 하는가에 대한 딴지를 걸었다. 충분히 깨끗하다는 이야기다. 살림이 다른 집에 비해 별로 없긴 하지만, 그래도 2주간 어설픈 가정 살림이 못내 아쉽고 앞으로도 내게도 필요한데 싶다. 아이 몰래 불러야 하나 싶다가 그건 또 이 눈치 빠른 녀석이 금방 알아챌 거다. 말싸움을 하다 '그러면 다 네 가해라'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는 K고딩이 아닌가. 초초초 예민한 아이(공부를 많이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를 가뜩이나 집을 비웠던 나로서는 아이의 말을 수용해 줄 수 밖에 없었다. 무조건 고딩이편이다.


하여튼 아빠는 쓰레기 버리고, 청소해 주는 일을 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나는 일주일 후 식세기 돌리는 일을 맡았다. 물론 밥 먹는 건 이모의 반찬과 어머님의 반찬, 친절한 그녀 올케의 반찬이 냉장고에 꽉 있었기에 가족은 연명할 수 있었다. 주변에 국 반찬 서비스 덕분에 감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침대생활을 지속했지만, 아침이 오면 소파에 누워 조금씩 재활을 시작했다.


재활의 시작은 발목을 조금씩 움직이는 데 있다. 범위가 넓다고 착각할 수 있는데 옆으로 1센티도 움직여지지 않았고, 돌아가던 발목은 반지에 끼인 것처럼 묵직했다. 나중에 느낀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활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은 것 같다. 수술 후 6주가 되고 며칠이 지나 의사가 허락하지 않은 상태에서(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지 않은) 발을 조금 디디기 시작했는데, 그 두려움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6주 만에 발을 디디는 것이기에 발바닥이 아플 수 있다는 후기들을 보고 무서움에 발바닥을 주무르고 마사지했다. 아프고 찔리고 부을까 봐 ㅠㅠ


3개월이 넘은 지금도 발목은 여전히 부어있는 걸 보면 그때의 무서움은 과정에 대한 무서움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래도록 발목이 부어있을 거란 얘길 왜 해주지 않는 것일까. 의사는 3개월 후의 과정을 여전히 설명하지 않았다. 도수 치료는 외래가 있는 날 가서 받기로 예약을 했고, 남편은 병원까지 동행해 주었다.


퇴원 후 외래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역시나 이전과 이후의 상황으로 비교하며 잘 지내라고 말해주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발이 부어있다고 했지만, 그건 당연한 거라고 말하며, 이제는 걸어라라고 말했다. 재활의 설명은 전혀 없는 도수치료를 처방했다. 도수치료사를 만나고 가라고 했다. 전문분야가 다르니 그날 도수치료사를 만나 예약을 잡았다. 일주일에 두 번 도수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도수 치료사분은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권했다. 집에서 가만히 있지 말고 발목으로 발을 디디고 움직여보라고 했다. 뼈는 괜찮으니까. 그게 뭐 말이 쉽지. 안 쓰던 발목을 쓴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나를 향해 발목을 꺾어야 하는 가동 범위 훈련은 빨간 밴드를 엮어서 아파도 당겨야만 늘어난다고 했다. 그들의 말은 정말 쉽지만 아픈 나의 발목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재활이 더 길고 어렵다고 말들만 했지만, 나는 잘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필라테스로 1년을 운동해왔던 나의 발목은 전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아킬레스건이 지금도 부자연스럽다. 계단은 도대체 언제나 돼서야 오르락내리락 자연스럽게 될 수 있을까. 뛰는 건 가능한 건가. 여러모로 심난하기만 했다. 재활은 맘먹는다고 되지 않는다. 맘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몸의 움직임은 내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찾아온 불똥이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만 한다.





짐머만 옹은 자신의 연주를 유툽에 흘려놓지 않는군 ㅠㅠ. 이 철저한 사람같으니.

찾다 포기하고 안드라스 쉬프 옹으로 대신함.






�슈만의 다비드동맹곡(Davidsbündlertänze), 작품번호 6은 1837년에 작곡된 피아노곡으로, 슈만의 초기 피아노 작품 중에서도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색채가 아주 짙은 작품이다. 이 곡은 단순한 춤곡 모음집이 아니라, 슈만의 내면 세계와 예술관이 녹아 있는 깊이 있는 작품이며 현재에도 피아노 연주자들에게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다.



�다비드동맹(Davidsbund) 이란?

슈만이 상상 속에서 만든 예술가 집단이며이 집단은 당시의 보수적이고 상업적인 음악계(Philistines)에 대항해서 진정한 예술을 옹호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슈만 자신도 이 다비드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그의 두 자아인 플로레스탄(Florestan):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면과 오이제비우스(Eusebius) 내성적이고 몽상적인 면을 가지고 두 인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곡은 18개의 짧은 곡들이 모여 있지만, 서로 연결되는 내면적 흐름이 있다. 각 곡에는 F(플로레스탄), E(오이제비우스), 또는 F&E라는 표시가 있어서, 어떤 자아가 주도하는 곡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선율은 매우 서정적이고 리듬은 춤곡이지만, 고전적 춤곡이라기 보다는 성격소품(성격소품이란 특정 분위기나 음악 외적인 사상을 표현하는 짧은 음악작품으로서 주로 피아노곡이 많으며, 낭만주의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19세기에 들어서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이전의 틀에 박힌 고전주의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자유로운 감정과 주관적인 표현 등을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추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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