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스틴 소나타 2번
달달한 선생님의 날
잃어버린 나의 기억과 흔적을 뒤에서 보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5월의 반이 흘러간다.
3월과 4월 60일간의 휴가는 생각과 달리 편히 쉬지 못했다. 몸은 무력했고, 마음은 공허했다. 일주일에 1회 도수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거 말고는 바깥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생활패턴은 다치기 이전의 나에게서 오는 전염병 같은 것이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더라도 칩거하며 책만 읽고 집에서만 하는 활동은 변함이 없었을것 같다.
아픈 나를 돌아보고, 언젠가는 걸을 수 있겠지 싶다가도 수술 흔적이 보이는 왼쪽 발목을 보면 언제 걸을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나를 보면서 식구들의 얼굴빛도 좋지만은 않았다. 그 얼굴이 싫어서 목발로 움직이며 하나둘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목발을 이용해서 서서 식세기에 식기들을 넣는 일을 시작했고, 한손으로 목발을 지탱 한후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로 바꿔 돌리는 일들을 했다. 평범하고도 간단한 일상의 일들은 꽤나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다. 두발로 직립보행을 하면 두 손이 자유로워 질텐데.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이 늘어난다는 것은 마음의 벽돌을 쌓는것 같았고, 벽돌을 하나둘 쳐내고 싶어미칠것 같았다.
일상 중 가장 행복했던 것은 손으로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러 좋아하는 커피향의 추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나를 위해 차를 내리는 그 순간. 이 버튼은 나를 무언가로 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시작함으로써 하루가 완성되어 가는 착각이 들정도였다. 잘만 찾아내면 나의 하루는 썩 나쁘지 않다.
그동안에도 커피가 주는 즐거움이 크다는 걸 진작 알았지만, 아직은 손가락을 써서 내릴 수 있는 커피 한잔과 그 향내가 나를 취하게 했다. 이 행위는 이전에 피아노 앞에 건반을 두들기는 마음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내게는 아직 손가락이 쓸만하다는 것. 그걸 증명하는 행위. 기쁜일들은 아직 남아있었다.
바깥활동을 하지 않는 내게 가족들은 조금은 걸을 수 있는 산책을 권유했고, 나도 5월의 복직을 걱정하며 걸을 준비를 시작했다. 부어있는 왼쪽 다리를 위해 새 신발을 사야했고, 부은 발목을 감싸 줄 양말이 필요했으며, 조금 더 증량된 내 허리를 넣어줄 새로운 크기의 바지가 필요했다. 몸만 보면 우울해야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몸은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운동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지만, 편안하게도 나는 그 상황이 괴롭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고나니 마음이 더 나았다. 할 수 없는 것을 붙들지 않고, 해야할 소중한 시간을 헤치지 않았다. 더이상 아프지 않고 디딜 수 있다는 시간이 온다는 것이 좋았다.
하나만 더 기뻐해 보자.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씻을 수 없는 고통은 말도 못했다. 매일 같이 샤워를 즐거워했던 내 몸은 샤워를 못하게 되면서 갑갑하기만 했다. 시존 판매제품 중에 물이 없어도 샤워가 가능한 제품을 사서 닦아보았지만, 나의 샤워 쾌감을 대신 해 줄 순 없었다.
남편이 목욕의자를 하나 사왔다. 목욕의자에 앉아 몸을 샤워기에 대는 그 순간이 너무나 시원하고 달콤했다.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는 순간. 말로 다 못한다.
5월, 다시 걷는다.
뚜벅뚜벅은 아니고, 천천히 절뚝절뚝 거린다. 통근길에 짜증이 날 줄 알았던 시간들이 걷는 연습의 통로처럼 생각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길 그 통로에서 보지 못했을 감사함을 만나기도 했다.
지팡이를 짚으시는 분, 다리를 절뚝거리시는 분, 쉬엄쉬엄 천천히 걸으시는 분들 각자의 걷는 속도를 만나게 된다. 알지못했던 것들을 보여주는 시간들.
아팠던 순간과 지난했던 시간들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 시간들이었다.
오늘도 한걸음 더 천천히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