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지 못한 왈츠 모음집
수술하고 다음날. 아침 7시면 때를 맞춰 아침밥이 나온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거나 커피 한 잔으로 요기를 하는 나에게 삼시 세끼 아침밥은 고역이다. 그럼에도 단백질을 먹기 위해 밥숟가락으로 뜨근한 계란찜을 떠서 입으로 넣는다. 부드럽고 야릿한 계란의 맛이 느껴진다. 이후로 몇 끼 먹다가 서서히 병원밥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끙끙거리다가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안자던 낮잠을 잔다. 침대 머리맡에 달려있는 이동식 티브이에 신기해하며 이런 게 우리 집에도 침대마다 달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통제 덕분인지 아니면 적응해서인지 고통이 서서히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기분.
아프지 않아야지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살기 위한 기분과 말을 만들기 위한 나의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수술 날 보다 덜 아프다.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일 조차 쉽지 않은 행동반경이 며칠 사이에 왼쪽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왜 여기 와서 환자복을 입고 병원 침대에 누워 안 보던 <모텔 캘리포니아> MBC 드라마를 채널을 돌려가며 보는 것일까. 온갖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이제 좀 살만한 것인지.
다리 아프다는 이야기는 주변에 하지 않았다. 가족들만이 알고 있었고,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연초부터 좋은 일들로만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의사 특유의 슬리퍼 걸음이 들린다. 그는 8시 30분 찾아와 커튼을 열기 전, 커튼 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나의 동의는 들을 새도 없이 그냥 커튼을 젖힌다.
"좀 어떠세요. 오늘 상태 좀 봅시다. 외래에서 뵈어요."
역시나 자기 할 만만하고 돌아선다. 이럴 거면 왜 회진을 도는 건지. 얼굴도장 찍는 것 같은 30초짜리 회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침 9시부터 외래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내 다리는 여전히 코끼리 다리였고, 욱신거림이 어제 보다 덜하다고 말했다.
" 차트 보시면 왼쪽은 내원했던 사진이고, 오른쪽은 수술 한 사진입니다. 아직은 철심을 받아 세워놓았고 다행히 뒷부분엔 잘 붙을 것 같아요. 다리 붓기가 심할 거라 냉찜질하시고 거상하세요. 염증 수치 확인하겠습니다. " 이후 며칠 되지도 않은 나를 도수치료며,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오더를 내렸다.
이전에 알았던 골절용 반기부스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리의 혈액순환을 잘 돕기 위해 기부스대신 의료용 부츠 같은 걸 신으라고 했다. 그래서 이틀에 한번 상처 부위를 직접 소독하고 찜질을 직접적으로 해 볼 수 있었다. 혈액순환에 훨씬 나았고, 무엇보다 꼬맨 나의 상처부위를 엿볼 수 있었다. 간지러우면 조금이라도 긁을 수 있었고, 다리의 붓기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는 미래에 어떻게 진행될 거란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현재의 상태만 이야기했다. 병 진료의 흐름이라는 게 있을 거고, 몇 주 진행될 거고 얼마 정도 낫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휴직 중에 다쳤고, 3월 복직 전까지는 2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2개월 안에 나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답답한 마음에 이곳저곳 검색도 해보고 치료를 미리 받으셨던 분들의 후기도 읽게 되었다.
6주는 돼야 뼈가 통상적으로 붙고, 발을 디딜 수 있다. 그리고 8-10주까지는 목발을 잡고 걷는 연습을 하는 것 같고 이때 재활을 하면서 다리가 엄청 붓는다. 사실 이 글을 쓰는 3개월 가까이에도 조금씩 걷기만 해도 다리가 빨갛게 부어오른다. ㅠㅠ 그럼에도 걸음을 뗄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다르다. 재활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을 아는 언니를 통해 전해 듣기도 했다. 아 '삼복사 골절' 진단은 외상적으로
정말 크게 다친 게 맞구나. ㅠㅠ
여하튼 냉 치료, 도수치료를 위해 재활치료실 환자 베드에 누웠다. 도수치료 동안 재활치료사분이 아직은 붓기가 계속될 거니 발가락을 최대한 움직이고, 고관절 운동 몇 가지를 처방해 주셨다. 아프다고 가만히 있으면 재활의 속도는 늦어질 거라는 용기와 협박 숙제를 주시기도 했다. 친절함에도 마음은 아직 도수치료가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걷는 연습을 하기까지 얼마나 재활을 해야만 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병실에 올라와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두 겨드랑이 사이로 목발을 짚어본다. 한걸음 걷기가 천리 같다.
발을 디디면 안 된다는 엄명(?)을 받은 터라 화장실 한번 가기가 이리도 어렵고 두려웠다. 남편은 혹시라도 이차 사고로 낙상이나 발을 디딜까 봐 노심초사했다. '간병인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남편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나란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 내 발을 의탁할 만큼의
편한 마음이 아니다. 어렵더라도 혼자 화장실에 가고 싶고, 식판을 뒤늦게 갔다 놓더라도 혼자 밥을 먹고 치우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공유하는 모든 것이 자유로운 것이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가만히 앉아 있더라도 그 사람을 신경 써야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의 공간적 시간적 공유는 답답하기만 할 것 같았다. '나 혼자로 충분해'
남편에게 병원에서 그만 자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아직은 식사를 챙겨줄 자식이 있으니, 아빠역할에 충실해달라고. 그를 보내고 나만의 시간으로 진입한다.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키고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의식적으로 뒤적거린다. 이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행동. 핸드폰의 사용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다.눈에 들어오지 않고 흥미도 없었지만 무언가를 보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은 막연하고 불길한 상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내가 클래식을 즐겨듣는 사람은 맞았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들리지 않았다. 아프니 음악도 들리지 않고 온갖 촉수가 왼쪽 다리에 가 있었다. 지금은 그저 킬링용 영화가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