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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Apr 24. 2022

아빠보다 더 강한 사람

여전히 아빠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함께 웃으며 나이 들기로 했다.


뱀을 봤다. 선명한 세모 모양 머리의 뱀이 산책로 중앙에 누워있었다. 늦은 저녁 달리기를 하다가 그 뱀을 보았다. 아빠에게 머리가 세모 모양인 뱀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식겁해서 긴바지 입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했고, 아빠는 그건 독사인데 벌써 뱀이 나오는 모양이라며 조심하라고 했다.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난 후 벌써 뱀을 본 게 다섯 번째이다. 예기치 않게 뱀을 보면 나는 아빠 생각이 난다. 왜인지 아빠가 있다면 그 옛날처럼 긴 장대에 뱀을 대롱대롱 걸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던져버려 나의 불안함을, 놀란 마음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 줄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대여섯 살 쯤이었다. 혼자 산길을 걸어 밭일을 하는 엄마 아빠에게 막걸리인지 음료수인지를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했을 때의 일이다. 어렸지만 씩씩했던 나는 교회에서 배운 찬송가도 큰소리로 부르고, 길 가에 피어있는 꽃도 꺾어 머리에 꽂고, 혼자 중얼중얼 이야기를 하면서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걸어갔다. 저 앞에 엄마 아빠가 보이는 곳까지 갔는데 내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곳에 멈춰 섰다. 더 이상 걸어갈 수도 없었고 엄마 아빠를 부르지도 못했다. 내가 소리를 치면 코 앞에 있는 뱀이 나를 물 것 같았다. 난 소리 죽여 울었다. 너무 무서워서 엄마와 아빠를 쳐다보지 못한 채 눈앞의 뱀을 보며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는지, 저 길 아래 서 있는 나를 발견한 엄마가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대답 없이 그곳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아무리 나를 불러도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아빠가 나를 데리러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내 앞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발견하고는 숲에서 긴 나무막대를 주워 천천히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고 그 막대에 뱀을 걸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나는 아빠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때 내가 울었는지, 울음을 그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가 무척 커 보였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내 앞에 어떤 무서운 일이 있더라도 아빠가 있다면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결혼 후, 울산에서 살았다. 당시에 아빠는 회사를 다녔고 엄마는 갓 태어난 나를 돌봤다. 나와 열세 살 차이가 나는 삼촌은 방학이면 울산에 놀러 왔다. 아마 내가 두 살 때쯤이었나. 아기 때부터 성질머리가 대단했던 나는 아빠가 출근 준비를 하는데 쉬지 않고 울어댔다. 자지러지게 울던 나를 달래던 삼촌은 내게 왕사탕을 주었고 우느라 목구멍이 벌어진 내 목에 사탕이 걸리고 말았다. 이내 내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출근 준비를 하던 아빠가 손가락을 내 목에 넣어 사탕을 빼려고 했으나 빠지지 않았다. 놀란 삼촌이 아빠에게 아기를 거꾸로 잡고 흔들어보라고 했고 당황했던 아빠는 진짜로 나를 거꾸로 잡고 흔들었으나 목에 단단히 걸린 사탕이 그렇게 간단히 나올 리가 없었다. 점점 사색이 되어가는 나를 눕혀놓고 아빠는 다시 손가락을 내 목구멍에 깊게 넣어 겨우 사탕을 뺐다. 놀란 나는 있는 힘껏 아빠의 손을 물었다. 어찌나 힘껏 물었던지 아빠의 손등은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찢어졌다. 이제 일흔을 앞둔 아빠의 손등에는 그때의 내 흔적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다. 아빠는 나를 그렇게 세상에 내놓았고, 그렇게 나를 살린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증오했다. 내가 아빠의 친딸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도 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나를 때렸다. 나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 자신의 성질머리를 꼭 닮은 딸이 아빠도 못마땅했었는지 모르겠다. 아빠에게 맞을 때마다, 내 몸 곳곳에 멍자국이 남겨질 때마다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내가 악다구니를 쓰며 울었다면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그만하라고 아빠를 혼내 줄 터였지만 나는 끝내 그러지 않았다. 분해서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가는 내게 엄마와 할머니가 잘못했다고, 아빠에게 빌라고 할 때 나는 더욱 아빠를 노려봤다. 끝내 성질을 죽이지 않는 내게 아빠는 더욱 매섭게 매질을 했다. 네 명의 자식 중에 아빠에게 맞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술에 취한 아빠는 나에게 공포였다. 아빠를 무서워하지 않는 동생들이 부럽기도 했고 밉기도 했다. 동생들이 싸운 날에도 아빠는 술 냄새를 풍기고 집에 와서 곤히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나를 때렸다. 동생들은 몰랐다. 그들의 사소한 싸움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매질을 가지고 왔는지. 그렇게 아빠에게 맞고 방에 들어와 세상모르고 자는 동생들이 한없이 미워 책상에 앉아 그들을 노려보며 잠들지 못한 밤들이 있었다. 


학대에 가까운 매질을 당했던 내 청소년기에 나를 지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술에 취한 아빠가 귀가하는 소리가 들리면 읽던 책을 덮고 잠을 자는 척을 했다. 아빠가 방문을 열고 잠자는 우리를 쳐다보는 인기척이 느껴지고 이내 엄마가 달려와 아빠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가면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책을 읽었다. 현대문학을 주로 읽었다. 황순원의 ‘소나기’,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라디오를 들었다. 박소현의 ‘FM데이트’ 이소라의 ‘밤의 디스크쇼’를 들었다. 라디오를 듣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동안, 책을 읽는 동안 감수성 많은 나는 아빠라는 공포를, 가난이 주는 절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성인이 되어 이 집을 떠나면 절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그때의 나를 지켜주었더랬다. 


나는 엄마의 얼굴 가졌다. 그리고 아빠의 성격을 물려받았다. 나는 아빠를 증오했지만 그 감정이 나를 갉아먹도록 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닮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부터 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엄마를 닮은 나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원하는 일에는 지독하게 매달리기도 했다. 물론 아빠를 닮았기에 이성의 끈이 풀리도록 화가 나는 날에는 아빠처럼 미쳐 날뛰기도 했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새겨진 두 사람의 유전자는 나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주었고, 유머감각을 남겨 주었고, 힘든 일도 별생각 없이 넘겨낼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하는 강인함을 주었다. 나는 두 사람을 닮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냈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서툴렀을 수도 있다며 그때의 아빠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때의 아빠는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했다. 나를 때리지 않았어야 했고, 나에게 욕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건 아빠의 잘못이었다. 가끔 그때의 기억이 내게 여전히 남아있음을 느낀다.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날 때 나는 그때의 공포 속으로 되돌아간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싸울 때, 나는 갑자기 열다섯의 내가 된다. 술에 취한 아빠에게 맞던 그 기억은 언제고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공포가 되살아나더라도 공포에 쉽사리 잠식당하지 않는 내가 되었다. 


이제는 아빠를 더 이상 그때의 마음으로 싫어하지 않는다. 내게 한 번도 상냥한 적이 없는 아빠였지만 나는 그때의 아빠를 내 기억 속에 남겨 두기로 했다. 그 상처를 꺼내어 곱씹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 두고 모른척할 것이다. 이따금 내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나를 찾아올 때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를 칭찬할 것이다. 나를 이 세상에 내어놓은 아빠도, 나를 살린 아빠도, 나를 지켜주었던 아빠도, 술에 취해 나를 때린 아빠도, 늙어버린 아빠도 모두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아빠라는 거대한 힘에 내 삶을 의지했던 어린 내가 아니다. 더 이상 아빠라는 공포에 질려 세상을 미워하던 내가 아니다. 나는 내 아빠보다 더욱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 


아빠를 이해할 수 없지만, 함께 웃으며 나이 들어가기로 한 사람.

유쾌하고, 긍정적이며, 쉽게 절망하지 않는 나라는 사람. 

내 부모보다 더 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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