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이 부러진 만큼 축구 실력이 늘었으면!
발톱이 부러졌다. 축구를 하다가 발을 밟힌 지 한참이 지났는데 며칠 전 발톱이 부러지고 말았다. 단순히 발등을 밟혔다고 생각했다. 축구화에 발을 밟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축구화는 일반 운동화와 달리 바닥에 스터드가 박혀있기 때문에 축구화에 발을 밟히면 무척 아프다. 조심한다고 해도 실력 없이 열정만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조심'하기란 쉽지 않다. 그 후 엄지발톱의 일부분이 하얗게 변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일부분은 검게 변했다. 나는 축구화가 불편해서 발톱 색깔이 변했으리라 짐작했는데 하얗게 변한 부분이 실은 발톱이 부러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축구화에 발을 밟혔을 때 같이 운동하는 분이 내게 말했다. ‘축구 오래 하신 분들 중에 발톱이 안 빠져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도 발톱이 여러 번 빠졌어요.’ 그 말은 내게 ‘발톱이 빠진만큼 축구 실력이 늘어날 것’이라고 들렸다. 그래서 어서 발톱이 한 번쯤은 빠지고 내 축구 실력이 그만큼 늘어나길 바랬더랬다.
몇 달 전,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니 축구하지 마라.” 엄마는 다짜고짜 나에게 말했다.
“어? 무슨 말이야 엄마?”
“아니. 축구 좀 하지 마! 왜 축구를 해!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잠도 덜 깬 내게 엄마는 설명도 없이 화를 냈다.
“갑자기 축구를 하지 말라니. 이유라도 이야기해줘야지.”
“니 사촌동생 신랑이 축구하다가 다리가 부러졌대. 야! 니는 나이도 있는데 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쩔 거야!”
“엄마, 나는 다리가 부러질 만큼 그렇게 뛰지도 못해.”
그랬다. 내가 축구를 시작하고 같은 축구인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던 사촌동생의 신랑이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정강이 뼈가 부러졌던 것이다.
이후로도 엄마는 나와 통화를 할 때마다, 나를 볼 때마다 축구를 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동네에 아는 사람도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졌다며 나이도 많은 내가 다치면 누가 돌봐 줄 거냐고 축구를 하지 말라고 나에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내가 축구장에서 뛰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엄마는 내게 축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이다. 축구장에서의 나는 공을 처음 가지고 노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축구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을 잘 다루지 못하고, 수비 포지션을 해도, 공격 포지션을 받아도 공 가까이 가는 일은 손에 꼽힐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너무 재밌다. 축구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없던 기운이 솟아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발톱이 부러지기 몇 주 전에 축구 연습을 하다가 우리 팀과 부딪혔던 적이 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팀을 나누어 간단한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콘사이를 지그재그로 공을 통과시켜 골대에서 골을 넣고 공을 손으로 들고 뛰어와 내 뒷사람에게 공을 넘겨주는 게임이었다. 요령이 없던 내가 열정이 넘치는 내 뒷사람에게 공을 넘겨주다가 손과 손이 부딪혔다. 손목이 쓰라렸지만 이기는 것이 중요했던 나는 열정적으로 다음 사람을 응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들어와 내게 물었다.
“언니, 손목 괜찮아요? 아까 우리 부딪혔는데.” 나는 내 손목을 보지도 않고 나는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언니, 손목 좀 봐요.” 그제야 손목을 보니 살점이 조금 떨어져 나갔고 손바닥과 손등에 피가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피는 내 옷에도 묻어있었다. 나와 부딪힌 사람은 손톱이 들려있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나보다 손톱이 들린 상대방이 더 아플 것이었다. 나는 연신 사과했다. 내가 제대로 공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나의 요령 없음에 미안해했다. 그녀는 운동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다독였다.
발톱이 부러지고 솔직히 뭐랄까, 조금 더 축구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발톱쯤은 부러져도 내가 공을 다루는 기술이 늘어난다면 얼마든지 부러져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부터 어쩐지 불편했다. 발톱이 통째로 뽑힌 것은 아니었기에 아프진 않았지만 무언가 나체로 강남 한 복판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항상 발톱 아래에 숨어있던 속살이 드러난 느낌은 어색했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매주 있는 축구 연습에 나가지 못했다. 그 시간에 회의가 있어서, 야근을 해야 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꾸준히 하지 못했다. 꾸준히 하지 못했음에도 손목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발톱이 부러졌던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급하면 높이 날아오는 축구공을 헤딩이나 가슴을 받는 것이 아니라 팔로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2주 전 다른 여성축구팀과 경기를 하던 중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축구공에 얼굴을 강타당했다. 어찌나 세게 공을 맞았던 지 뇌가 한쪽으로 쏠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멍이 올라오면 어쩌나 했지만 내 피부가 튼튼한 건지 멍이 잡히지도 않았다. 발톱이 부러지고 손목에 살점이 떨어져도 나는 축구인이 되기에 실력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축구를 하면서 상대방과 부딪히는 일이 조금 덜 무섭다. 물론 아직도 공이 날아오면 무섭지만 처음보다 무서움이 덜해졌다. 공을 맞아도 보기보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는 것을 공을 맞아보고 나니 알게 된 것이다.
축구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때도 축구는 재미있었다. 이제 축구공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으니, 축구는 더욱 재미있어질 것 같다. 무엇이든 두려운 마음으로는 충분히 즐길 수가 없을 테니. 이제 축구장에 조금 더 자주 나가야 하겠다. 다친 만큼 실력이 늘기 위해서는 축구장에서 축구공을 많이 차야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