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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Sep 01. 2020

장난감을 대하는 자세

잘 때도 바스락 인형을 놓지 않는 꽃님이




나의 반려견 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이 별로 없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복길이의 시샘을 받아서인지 누르면 삑삑 소리가 나는 인형도, 강아지들이 환장한다는 만득이도 몇 번 가지고 놀고 처박아두기만 했다. 비가 와서 산책을 못 가는 날이 이어지면 무료해하는 봄이를 위해 내가 열심히 인형으로 놀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 그제야 슬금슬금 다가와서 5분, 10분 나와 놀아주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잠을 잔다. 이쯤 되면 누가 개고, 누가 사람인지 헷갈린다. 그녀에게도 최애 장난감이 있었지만, 실밥이 터져 솜이 나와버렸고 위험할 것 같아 봄이 입에 있는 솜을 빼주려다 몇 번 물린 이후로 최애 장난감은 치워버렸다. 봄이는 소리가 나는 장난감보단 물어뜯을 수 있는 장난감을 좋아했는데 그도 꽃님이의 등장으로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게 되었다. 장난감을 쳐다보기만 해도 아르르 성질을 내던 복길이와의 경험 때문인지 다른 강아지가 있으면 되도록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 


강아지 공장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꽃님이는 유독 장난감 욕심이 많다. 구조자님 집에 있을 때에는 방석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고 했는데 우리 집으로 입양이 되고 난 후, 켄넬과 강아지 텐트, 방석이 곳곳에 있어서 그런지 방석에 대한 집착은 없어졌는데 대신 다른 것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그중 제일은 봄이의 파자마. 올해 초, 아는 분께서 선물해주신 봄이의 파자마인데 날씨가 더워져 서랍에 넣어둔 것을 어떻게 알고 꺼내와 잘 때도 항상 가까이 두고 잔다. 너무 꼬질 해져서 빨아주려고 하면 난리가 난다. 잘 때 그 옷이 없으면 온 집안을 뒤지며 찾아다니기에 세탁은 항상 주말에 한다. 손빨래하는 동안에도 내 뒤에 서서 감시한다. 건조대에 말려두면 그것만 쳐다보고 있다가 아예 건조대 밑에 드러누워버린다. 나는 강아지들과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꽃님이는 내가 침대로 가면 바로 뛰어올라왔다가도 다시 총총 내려가 거실에 있던 그 옷을 입에 물고 킁킁 소리를 내며 침대로 올라와 한참을 핥다가 잠을 잔다. 종종 침대에 오줌을 싸놓는데 희한하게도 그 옷이 침대에 있으면 절대 침대에 오줌을 싸지 않는다. 하참. 기막혀.


얼마 전, 간식을 주문하면서 바스락 인형도 함께 주문했다. 강아지가 두 마리니까 두 개의 바스락 인형을 주문했는데 역시나 봄이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반해 꽃님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해 주니 사준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예상치 못했다. 이제 꽃님이는 잘 때 봄이의 파자마를 물고 침대로 올라왔다가 다시 뛰어내려 가 거실에 놓인 바스락 인형을 물고 침대로 올라와 계속해서 바스락바스락 거린다. 이렇게 나의 숙면을 방해할 줄이야! 꼭 침대 끝에 앉아서 바스락바스락 거리다가 인형을 떨어뜨리고서는 다시 후다닥 뛰어 내려가 인형을 물고 올라와 또 바스락바스락.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꽃님이가 잠들면 그제야 나와 봄이가 잠들 수가 있다. 만득이 인형도 소파에서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리고 뛰어내려와 물고 올라가는 과정을 열댓 번 반복한다. 양쪽 뒷다리 슬개골 수술을 받은 아이인지라 관절에 무리가 갈까 싶어 방석에서 가지고 놀라고 만득이 인형을 방석에 던져주면 또 입에 물고 소파로 올라온다. 


어쨌든 내가 사준 인형과 장난감을 이렇게나 좋아해 주니 너무 고마운 일인데, 잘 때는 제발 바스락 인형은 잊어주길. 나도 잠 좀 자자고. 내가 돈을 벌어야 또 다른 장난감을 사줄 텐데 말이다. 누가 강아지어로 대신 이야기 좀 해주면 좋으련만! 잠 좀 자자 꽃님아 제발.




봄이의 파자마


파자마를 빨아서 건조대에 말리는 동안 드러눕기 시전하는 꽃님이. 이날 꽃님이 때문에 발코니 물걸레 청소를 했더랬다.





파자마 빼앗길까봐 물고 다니는 꽃님이




밤새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인형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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