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Sep 03. 2020

강아지와 로봇 청소기의 만남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로봇 청소기를 사용하고 있는 동생은 종종 나에게도 로봇청소기의 편리함을 설파하며 구매하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이슨 청소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더군다나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복길이는 푸들이었고, 봄이는 말티즈인지라 두 녀석 모두 털 빠짐이 없기로 유명한 견종이었기에 굳이 로봇 청소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봄, 우리의 가족이 된 꽃님이는 어마하게 털이 빠졌다. 이런 털 빠짐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했다. 캐벌리어 킹 찰스 스패니얼 종이라 털 빠짐이 어느 정도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많이 빠질 줄은 몰랐다. 그래, 나도 온 집안에 머리카락을 흩뿌려 놓는 사람이기에 털 좀 빠지면 어떠랴 하는 마음에 퇴근하고 나면 다이슨으로 우리 둘의 털을 청소했다. 이 전 집은 바닥이 강화마루여서 털이 떨어져 있어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어차피 나는 눈도 나쁘니까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그러나 새 집으로 이사하고 장판을 대리석 문양으로 시공하고 나자 눈이 나쁜 나에게도 털이 보이기 시작했다. 퇴근하면 항상 내 손엔 돌돌이가 들려 있었다. 그래도 털이 빠지는 것을 다 제거할 수 없었다. 꽃님이의 이동 경로를 따라 털이 흩뿌려졌다. 악!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나는 로봇 청소기를 들였다. 


나는 후회했다. 로봇 청소기를 사고 계속해서 후회를 했더랬다. 털이 많이 빠지는 강아지가 사는 집에 로봇 청소기를, 왜 이제야 들였나 하는 후회를 말이다. 강아지들이 로봇 청소기에 겁을 먹으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처음에만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고 이내 그들은 무관심해졌다. 나는 이제 퇴근하면 아이들 밥을 먹이고 로봇 청소기를 켜 둔 채 산책을 나간다. 한 시간 가량 걷고 들어오면 온 집에 흩어져있던 꽃님이의 털은 로봇 청소기가 깔끔하게 청소를 해두었다. 신세계였다. 그러면 나는 돌돌이를 들고 소파와 쿠션, 아이들이 앉았던 방석 등을 청소하면 끝이었다. 우리는 매일 조금 더 깨끗해진 공간에서 쉬게 되었다. 이제 로봇 청소기가 없는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로봇 청소기 만세!


며칠 전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재택근무 첫날 아침, 혹시나 비디오 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로봇 청소기를 켜 둔 채로 나는 씻으러 들어갔다. 아이들은 소파 위에서 평소처럼 자고 있었다. 안심하고 씻으러 들어갔던 나는 개운하게 씻고 나와서 참혹한 광경을 마주했다. 그랬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그일,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씻으러 들어가고 난 이후, 둘 중 한 녀석이 혹은 두 녀석 모두 평소에 하지 않던 모닝 똥을 했고, 로봇 청소기는 사뿐히 그 위를 즈려밟고 지나갔다. 이미 로봇 청소기는 거실 청소를 마치고(똥칠을 완료하고) 침실로 똥칠을 하러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울부짖으며 침실로 뛰어들어가 로봇 청소기를 멈춰 세웠다. 울부짖는 내 외침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아, 나의 태평한 강아지들. 두 녀석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나의 로봇 청소기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직 내 잘못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평소와 달리 내가 출근하지 않고 씻으러 들어가자 그들도 평소와 달리 모닝 똥을 했을 뿐이다. 로봇 청소기는 아이들의 모닝 똥을 치워야 하는 것으로 판단했을 뿐이었다. 각자 자기가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오로지 나만이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로봇청소기를 켜 둔 동안은 자리를 지킬 것!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상세한 묘사는 차마 하지 않겠다. 


나는 업무용 노트북을 켜 둔 채로 로봇 청소기가 지난 자리를 물걸레 청소를 했다. 그리고 로봇 청소기를 뒤집어 그의 몸에 끼인 똥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쉽지 않았다. 똥은 바퀴에 촘촘히 끼여있었고 모든 틈새에도 빠짐없이 끼여있었다.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재택근무 첫날, 업무 시작도 하지 못하고 나는 로봇 청소기를 이전과 같은 형태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물티슈 한통을 다 쓰고 나서야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라면 묽은 똥이 아니었다는 것, 로봇 청소기가 침실에 들어서기 전에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소동을 겪고도 나는 로봇 청소기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라면 너무 늦게 샀다는 것뿐.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강아지들은 모닝 똥을 할 줄 안다는 것, 로봇 청소기는 가구가 아닌 이상 다 쓸고 다닌다는 것. 나는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는 바보 멍청이라는 것. 


오늘 아침,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로봇 청소기는 제 할 일을 하고 충전하러 갔고, 나의 강아지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충전을 하고 있다. 저녁 산책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충전 중인 나의 강아지들


이전 13화 무던하지만 마음 여린 강아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