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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Sep 06. 2020

무던하지만 마음 여린 강아지

나를 그렇게 쉽게 평가하지 말라고요.


올봄, 우리의 가족이 된 꽃님이는 무던하다. 짖는 일이 거의 없고 침대에 오줌을 싸고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어느새 이불을 빨고 정리하고 있으려면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맛없는 사료도 세상 맛있게 먹고 간식을 나눠주면 본인 간식을 금방 다 먹고는 봄이가 천천히 간식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복길이가 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밥이든 간식이든 천천히 먹는 봄이를 죽일 듯이 으르렁 거리며 시비를 거는 강아지와는 달랐다. 시골집에서 가족들이 모두 밥 먹고 있으면 본인 자리로 가서 잠을 잔다. 봄이는 밥상 아래를 돌아다니며 누군가 흘리는 밥알이 없나 찾는데 말이다. 꽃님이는 어디에서든 잘 자고, 어떤 사료든 간식이든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고, 어떤 장난감이든 최선을 다해 가지고 논다. 모든 일에 진심인 아이다.


꽃님의 외모도 예민함과는 멀어 보인다. 약간 뚱해 보이는 얼굴이다. 성격도 그렇고 외모도 무던해 보이는 편이라 가끔 나는 잠자는 꽃님이의 볼을 만지면서 ‘천하태평 우리 꽃님이’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그렇게 무던해 보이는 꽃님이는 실은 아주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우리 셋은 함께 잠을 자는데 꽃님이는 침대 끝에서 애착 파자마를 품에 안고 잠을 자고, 봄이는 꼭 이불 안에서 잠을 잔다. 그러다 보니 봄이는 복길이한테 밟힌 적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봄이는 아르르 거리며 이불속에서 입질을 했다. 물론 복길이는 귀가 안 들렸기 때문에 그런 봄이를 무시했었고 나는 혹시 둘이 싸울까 봐 서둘러 복길이를 다른 자리로 옮기거나 봄이를 달래곤 했다. 꽃님이가 오고 난 이후 두 녀석은 잠자는 자리가 달랐기 때문에 꽃님이가 봄이를 밟는 일이 없었는데 얼마 전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꽃님이가 실수로 이불속에 있는 봄이를 밟았던 것. 이전처럼 봄이는 이불속에서 아르르 거리며 성질을 냈고 그런 반응에 놀란 꽃님이는 곧장 침대를 내려가 거실로 가버렸다. 나는 꽃님이를 불렀다. 그러나 내가 여러 번 불러도 꽃님이는 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나는 거실로 나갔고 소파에서 잠을 청하던 꽃님이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꽃님이는 내 품에 안긴 채로 힝힝거렸다. 나는 꽃님이의 등을 두드리며 같이 침실로 왔고 꽃님이가 잠을 자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꽃님이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던지 다시 총총 침대를 내려가 소파에서 잠을 잤다. 꽃님이는 그렇게 3일 동안 소파에서 잠들었다. 무던한 강아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꽃님이는 마음이 무척이나 여린 아이였다.


3일 후부터 꽃님이는 다시 침대에서 잠자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일상을 되찾았다. 꽃님이는 여전히 러그나 방석에 오줌을 싸 두고 내가 분주히 치우고 있으면 미안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코를 골며 잠을 잔다. 내가 꽃님이를 깨우며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귀찮다는 듯이 발길질을 몇 번 하다가 다시 잠을 잔다. 꽃님이와 가족이 된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지만 매번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렇게 몰랐던 성격과 성향을 알아가며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며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낑겨서도 잘잔다개.


할 말 있으면 내일 하라개. 나 지금 자고 있으니 깨우지말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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