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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Sep 12. 2020

선생님, 얘가 얌전하다고요?

나도 몰랐던 내 강아지의 이중성


“아휴, 봄이는 정말 얌전해요. 어쩜 이리도 착한지”

“네? 봄이가요? 얘가 얌전하다고요? 다른 개랑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봄이가 얼마나 착하고 얌전한데요. 한 번도 짖지도 않았어요.”


3년째 다니는 동물 병원에 가면 매번 원장님은 봄이를 얌전한 강아지로 평가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것이다. 내가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가게 되어 동물병원에 호텔링을 맡기고 픽업을 하러 가면 항상 봄이 칭찬을 한다. 내 강아지가 칭찬을 받으니 나도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어쩐지 찝찝하다. 나를 보고 반가워서 봄이가 막 짖으면 원장님이 놀라면서 “너도 짖을 줄 아는구나” 할 때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아, 이년이 나한테만 성질을 부리는구나, 내가 이 싸가지없는 강아지의 밥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봄이는 정말 이쁘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질 만큼 예쁜 강아지다. 그리고 단언컨대 봄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누구든 봄이를 보면 “와~ 너무 예쁘다. 봄이는 어쩜 이렇게 이뻐?”하며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와 함께 웃어주는 반응에 익숙해서일까 사람들의 관심이 본인에게 없으면 어떻게든 어필을 한다. 앞발로 톡톡 치며 자기를 만져달라고 요구하고 큰 눈을 반짝이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면 다들 “아이고 우리 이쁜 봄이”하며 봄이를 만져준다.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면 봄이는 나에게 오지 않고 손님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있다. 하아.


봄이를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길이랑 봄이가 싸울 때, 둘을 말리며 나이가 더 많은 복길이를 안아 올렸더니 그 작은 몸을 날려 내 팔뚝을 물어뜯었다. 겨우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소독약이 없어 소주로 피나는 팔뚝을 소독하며 알아봤다. 쟤가 얌전해 보이지만 그 안에 독기가 서려있다는 것을. 또 봄이는 내가 양치를 해주려고 하거나 발톱을 깎아주려고 하면 경고 없이 문다. 복길이는 싫어하며 도망을 가는 것을 택했다면 봄이는 처음에는 얌전히 안겨 있다가 다짜고짜 물어버린다. 봄이 양치를 하거나 발톱을 깎으려면 내 손가락 하나쯤은 없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복길이와 봄이가 싸울 때 둘을 뜯어말리다가 내 손이 복길이 입안으로 들아가면 복길이는 바로 싸움을 멈추었다.(성질머리는 대단했지만 절대 나를 물지 않았다.) 그러나 봄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내 손등에 이빨 자국을 새기는 것이다. 내가 아파서 악!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내 손을 물고 흔든다. (물론 봄이는 나 이외의 사람을 물지 않는다. 그럴 일은 절대 만들지도 않거니와 이년은 나 아닌 사람들에겐 무척 친절하기 때문이다.) 또 복길이는 누군가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짖었다면 봄이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짖는다. 산책을 하거나, 자동차를 타면 최소 10분은 짖는다. 특히 차 안에서 짖을 때, 너무 시끄러워 음악 볼륨을 높이면 더 크게 짖는다. 그쯤 되면 나도 봄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게 된다. “악! 시끄러워! 그만 좀 짖어!” 그러면 봄이는 온 몸으로 짖는 것이다. 하아.


지금 다니는 병원에는 아이들 기본관리(발톱 깎기, 생식기 주변 및 발바닥 털 정리 등)를 할 땐 보호자 없이 처치실에서 진행하는데 그전에 다니던 병원은 진료실에서 기본관리를 했더랬다. 그러면 나는 봄이를 잡아주거나 다정하게 말을 건네었는데 봄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소리를 지르고 짖고 난리를 쳤다.  

“봄아, 좀만 기다려. 곧 끝나.”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 봄이는

“아르르 왈왈왈” (짜증나! 정말 싫어! 하는 것처럼 짖는다.)

“봄이 너무 싫지? 좀만 참자. 집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간식 줄게.”

“왈왈왈왈”(너나 쳐 먹어. 꺼져. 꺼지라고! 라며 더 살벌하게 짖는 것이다.)

그쯤 되면 나는 원장님께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진료실을 나가야 한다.

내가 진료실을 나오면 봄이는 언제 짖었냐는 듯이 아무 소리도 없이 기본관리를 받는다.

아 저 싸가지없는 년.


생각해보면 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항상 주눅 들어 있었다. 복길이의 성질머리가 대단했던 탓도 있을 것이고 길에서 생활한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던 기억도 있었으리라. 복길이는 병원에 가면 싫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어떨 때는 수의사 가운에 오줌을 싸놓기도 했던 아이였는데 봄이는 동물 병원에 가면 무척 얌전했다. 인식 칩을 심을 때도 끙 소리 한번 하지 않았고, 예방 접종을 맞을 때도 복길이는 비명을 지르며 엄살을 부렸는데(주사를 맞지도 않았는데, 주사를 보면 바로 비명을 질렀더랬다.) 봄이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그저 큰 눈만 껌뻑거리며 혀만 날름거렸다. 그토록 주눅들어있던 봄이가 이제 나에게만 싸가지없이 구는 것은 아마도 나는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믿을 수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히, 얌전히 행동해야 본인이 상처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나에게도 조금 더 친절해주면 좋겠다고. 이 싸가지야.



성질난 날은 눈으로 욕하는 봄이.




인형아님 주의.


동물병원 다녀온 날은 불러도 아는 체 하지 않는 성질난 봄.
처음 만났을땐 항상 기죽어있던 아이었는데, 이젠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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