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Sep 14. 2020

강아지들과의 대관령 트레킹

대관령 선자령 그 길 위에서 진드기들과도 조우하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 경주에서 살 때는 퇴근하면 강아지들과 황성공원을 한두 시간씩 걸었다. 당시 나의 강아지들도 나처럼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녀들의 뒷다리는 근육이 탱탱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강아지들과의 트레킹을 꿈꿨었다. 그러나 겁 많은 나는 동행인이 없이 혼자서 강아지들과 트레킹을 할 정도의 용기가 없었기에 언제나 나의 희망사항으로 남겨두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강아지들과 트레킹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았는데 지난 6월 불현듯 대관령에 가고 싶어 졌다. 강릉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대관령 트레킹에 동행하겠냐고 물었고 강아지를 무서워하던 친구는 선뜻 함께 가자했다. 그렇게 봄과 꽃님이, 나와 내 친구, 그녀의 9살 된 아들까지 함께 대관령 선자령 트레킹에 나섰다.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하니 집에서 선자령 등산로 입구까지 약 2시간 정도가 예상되었다. 아무래도 강아지들과 함께 가는 트레킹이기에 사람들이 많은 시간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구와 입구에서 새벽 6시에 만나자고 했었다. 나는 4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4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7시에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변경했다.


새벽 5시에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대관령으로 출발했다. 봄이는 차에 타자마자 짖기 시작했고 꽃님이는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두 시간이 예상되었지만 도로에 차가 없었기에 한 시간 반 만에 대관령에 도착했다. 6월이었지만 새벽의 대관령은 쌀쌀했다. 우리는 선자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아주 작은 강아지도 무서워하는데 그날은 용기를 내 꽃님이의 줄을 잡았고 친구의 아들은 봄이의 리드 줄을 잡았다. 오직 나만이 두 손이 가벼운 채로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선자령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았고 나의 작은 강아지들도 예상보다 잘 걸어주었다. 두 시간쯤 올랐을까. 선자령 정상에 오르니 저 멀리 바다가 보였고 내가 항상 꿈꾸었던 대관령의 그림이 펼쳐졌다. 나는 마음이 힘들 때면 고향집 생각도 많이 하지만 대관령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날 만난 대관령은 그동안 마음에 쌓아왔던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리기에 딱 맞았다. 하늘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푸르렀고 그 아래에는 온통 초록빛인 대관령이 있었다. 걷다가 힘들면 아이들과 함께 쉬었고, 목을 축였다.


서늘한 날씨 덕에 더위를 많이 타는 봄과 꽃님이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 리드 줄을 잡고 있는 친구와 친구 아들도 트레킹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 봄이의 리드 줄을 잡고 있던 친구 아들이 넘어졌다. 바지가 좀 찢어지고 피가 좀 났지만 씩씩한 아이는 울지 않았다. 나는 봄이의 리드 줄을 건네받고 용감하다고, 너무 씩씩해서 이모가 감동받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실은 아파서 좀 울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나와 친구가 넘어져도 울지 않는 모습이 멋지다고 계속해서 칭찬하자 나중에는 배시시 웃기까지 했다. 사실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좀 더 가팔랐지만 등산스틱을 챙겨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한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대관령에 왔으니 나와 친구는 황태해장국을 주문했고 친구 아들은 돈가스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아이에게 물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지?"

"아니요. 맛있는 식사였어요!"

아참, 초등학교 2학년에게 '만족'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몰랐다. 아, 이토록 아이들과의 대화는 나에게 너무 어렵다.

지친 꽃님이는 테이블 아래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고 안아달라고 조르는 봄이를 무릎에 잠깐 앉혀놓았는데 봄이가 뒤척이자 내 무릎에 진드기 한 마리가 떨어졌다. 매달 진드기 약을 먹여왔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점심을 다 먹고 우리는 깔끔하게 헤어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막히지 않았고 한 시간 반 만에 집에 도착했다. 나는 봄이와 꽃님이를 앉혀놓고 온 몸을 헤집었다. 꽃님이에게는 진드기가 없었는데 키가 작은 봄이에게서 진드기를 세 마리나 발견했다. 그중 봄이의 허벅지를 문 녀석은 대가리를 피부 속에 처박고 있었다. 시골집 강아지들 진드기도 떼어본 경험이 있는 나이기에 몸통을 잡고 떼려고 했더니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목욕을 시키면 떨어질까 싶어 피곤한 아이들을 달래 목욕을 시켰지만 그래도 봄이 허벅지에 붙은 진드기가 떨어지지 않았고, 다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신호 정차 중에 봄이를 만지다 보니 콧잔등에도 한 마리가 붙어있었다. 결국 동물병원에서 봄이 허벅지에 붙은 진드기도 제거했고 콧잔등에 앉은 진드기도 제거했다. 모든 진드기를 제거했다는 이야기에 원장님께 나는 고해성사를 했다. 다 내 잘못이라고, 내가 괜히 애들 데리고 대관령을 갔다 와서 이런 사달이 났다고. 매달 진드기 약을 먹이는데 어떻게 진드기가 붙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진드기 약을 먹인다고 해서 진드기가 전혀 안 붙는 게 아니라 진드기가 붙어도 몇 시간 후면 죽는 거라고 하시면서 매달 관리하기 때문에 진드기가 붙어도 걱정하지 말라고 대신에 아이들과 이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게 더 중요하다며 넋이 나간 나를 달래주셨다.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간의 트레킹을 하고, 세 시간 운전을 하고,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다시 동물 병원으로 달려가고 했더니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여느 때보다 큰 소리로 코를 골며 잠들었고, 나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두 녀석 모두 심하진 않지만 심장병이 있어서 트레킹을 가기 전에 혹시나 힘들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더랬다. 힘들어하면 안고서라도 중도에 내려오면 될 거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트레킹 이후, 이 녀석들은 에너지가 증폭되었다. 평소보다 길게 산책을 해도 좀처럼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가 되었다. 친구와 다음번엔 도그 비치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었는데 코로나 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올해는 아쉽지만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집순이인 나를 만난 우리 강아지들은 여행도 못 다니고 매일 하는 동네 산책과 시골집 방문이 아니면 계속 나와 함께 집에만 있게 되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1년에 단 한 번일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 다녀오면 나도 힐링이 되고, 아이들도 더 생기가 넘치게 된다.


진드기 때문에 무척 놀랐지만 다녀오고 나니 우리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던 같아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다녀봐야지 잠깐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게을러. 미안하다 얘들아. 그렇지만 너희도 나 못지않게 게으르지 않니? 후훗




덧붙임) 트레킹 중에 저희 강아지들의 배설물은 모두 가지고 내려왔는데 길 중간중간 개 배설물이 많았습니다. 혹시 반려견과 선자령 트레킹을 가실 분들은 꼭 배설물을 치워주세요.




꼬질한 나의 갱얼지들.


대관령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는 꽃님.


장화 신은 것 같은 봄


선자령을 오르는 길
흔한 대관령의 풍경.



이토록 푸른 하늘과 이토록 푸르른 나무들이라니!


이전 10화 호기심이 많은 건 좋은 거겠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