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Mar 21. 2021

개 키운다고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발 펫티켓을 지켜주세요.


매일 강아지들과 산책을 한다. 퇴근 후, 강아지들 밥을 먹이고 목줄을 채우고 배변봉투를 챙겨 강아지들과 함께 서둘러 거리로 나선다. 정시 퇴근을 한 날에는 한 시간가량 동네 공원을 걷고, 좀 늦게 퇴근한 날은 삼십 분 정도 아파트 단지를 걷는다. 그리고 나는 요가 학원으로 향한다. 월, 수, 금요일에는 요가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전화영어 수업을 한다. 아무래도 매일 요가 학원을 가야 하고, 거기에 월, 수, 금요일에는 전화영어 수업까지 있으니 퇴근을 하고 오면 전쟁하듯이 산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말엔 강아지들과 집 앞 강변을 시작으로 근처 공원을 거처 집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이용해 느긋하게 산책을 한다. 아무래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산책을 하다 보니 공원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들이 정해져 있는데 주말에는 낮시간에 산책을 하다 보니 처음 보는 강아지들을 만나는 일이 잦다. 그럴 때면 강아지 보호자분께 강아지들끼리 인사를 시켜도 되겠냐고 여쭤보고는 허락을 받으면 강아지들끼리 인사를 시킨다. 아무래도 다른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강아지도 있고, 공격성을 보이는 강아지들도 있고, 보호자가 원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먼저 정중히 여쭤보는 것이다. 


여느 주말과 다르지 않은 주말. 나는 평소처럼 느지막이 일어나서 방구석 1열을 보았고, 김치찌개에 밥을 먹었고,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어제는 비가 와서 산책을 하지 못했으므로 나의 강아지들은 한껏 신나 있었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봄기운이 실려 있었다. 우리는 강변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평소처럼 근처 공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놀이터 구석에서 놀고 있던 골든 두들 한 마리와 몰티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강아지들의 목줄을 잡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었다. 처음 보는 강아지들을 만난 꽃님이는 연신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저 강아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했고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강아지들 인사시켜도 되나요?” 

목줄을 잡은 아이들이 그래도 된다며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리 강아지들과 그쪽 강아지들은 신나서 서로 냄새를 맡고 인사를 했다. 충분히 인사를 했다고 생각되어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에 한 가족이 아이들에게로 다가왔다. 


그 가족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왜 입마개를 안 하니?” 

강아지들 목줄을 잡고 있던 아이들은 무서운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는 안 물어요.” 

남자가 다시 말했다. 

“물고 안물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렇게 큰 개는 입마개를 해야한다고. 우리 애가 무서워하잖아.” 

자리를 뜨려던 나는 어이없는 광경에 옆에 서서 자칫하면 아이들 대신 남자에게 항의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두 자매 중 어려 보이는 아이가 차분히 말했다. 

“얘는 입마개를 해야 하는 견종이 아닌데요?” 

여자아이의 대꾸에 남자는 화가 났는지 

“이렇게 큰 개는 입마개를 해야지. 애가 무서워하잖아.” 

화난 얼굴로 좀 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옆에 서있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곧 자리를 피했다. 크기가 큰 골든 두들을 문제시한 것인데, 그 가족들보다 먼저 강아지들을 만난 내가 지켜본 바, 골든 두들은 그 가족 근처로 가지도 않았고 그 가족을 쳐다보지 않았으며 우리 꽃님이와 봄이 와 인사를 한 것이 전부였다. 


남은 아이들은 서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자매를 만났을 때 어딘가에 부모님이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끼리만 강아지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것이었다. 물론 큰 개를 보호자 없이 어린아이들만 산책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인 남자가 초등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이가 강아지를 무서워한다면서도 굳이 강아지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온 것은 무엇이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로 큰 개가 밖에 입마개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불쾌했다면 그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서 항의를 했어야 했다. 내가 그 남자를 쳐다보았더니 그 남자는 아직도 기분이 나빴던 것인지 아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뜨면 그 남자가 다시 아이들에게로 와서 위협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저 사람이 다시 올 수도 있으니까 다른 데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은 울먹이며 자리를 떴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나서야 내 강아지들과 공원으로 이동했다. 


십여 년 전,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더랬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복길이와 공원을 산책하다 한 남자가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왜 더럽게 개를 공원에 데리고 오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 공원에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사람은 나 이외에도 많았지만, 게 중 가장 어려 보이는 나에게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배변봉투도 있고, 인식표도 있고, 목줄도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했더니 그 남자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아니, 여기가 사람 다니라고 만든 공원이지 개가 오라고 만든 공원이 아니잖아! 개 데리고 다니지 마! 아주 재수가 없어. 쯧쯧” 

나는 강단 있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심약한 편이라 서둘러 복길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둘째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동생은 아주 어이없어했다. 

“야! 니는 거기서 그냥 왔나? 경찰을 불러야지! 아오! 그런 새끼들은 경찰을 불러가지고 혼을 내줘야 한다고! 진짜 니는 우에 된 사람이 그런 사람을 만나도 쫄아가지고 그렇게 그냥 올 수가 있어?” 

일차로 모르는 남자에게 욕을 처먹고 이차로 피붙이인 동생에게도 욕을 얻어먹었다. 그 일은 그냥 재수 없게 당한 일쯤으로 생각하고 넘겨야지 했으나 다음날부터 나는 산책을 나갈 때면 또 비슷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산책을 하다가도 성인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면 나는 한껏 움추러 들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 중에 펫티켓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을 목격하면 한숨이 나온다. 산책을 나오면서 배변봉투 없이 나와서는 강아지가 배변을 하면 멀뚱히 지켜만 보는 사람을 목격하면 다가가서 “이것 한 장 드릴까요?” 라며 내 배변봉투를 주며 물어보면 대부분 민망해하며 받아서 본인의 강아지 배변을 치운다. 그다음에 만나면 그 보호자의 손에 배변봉투가 들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목줄을 하지 않은 채로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꽃님이는 강아지를 만나면 허락이 없어도 인사를 하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한데, 목줄 없는 강아지의 경우 반가워 달려가는 꽃님이를 피해 움직이다 혹시 무슨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런 강아지를 발견하면 내가 먼저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가게 된다. 물론 산책 중 만나는 대다수의 보호자들은 펫티켓을 잘 지키는 분들이고, 그들은 혹시나 내 강아지가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강아지들에게 피해를 줄까 항상 조심한다. 그래서 이렇게 안하무인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 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무지하기에 용감한 사람들을 피해야 하는지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피하는 편을 선택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며 끝내 분개하고야 마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강아지가 존재한다. 내 아이가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강아지가 있는 쪽으로 와서 괜한 시비를 걸지 말고, 펫티켓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괜히 재수 없다며 시비를 걸지 말 것이다. 정 그렇게 시비를 걸어 누군가와 싸우고 싶다면 목줄을 채우지 않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에게, 배변봉투도 없이 산책을 나와서 강아지가 싸 놓은 배변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다 뒤돌아서는 사람들을 노릴 일이다. 아마 그런 사람들에게는 논리가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무지에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인들이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펫티켓을 지키는 사람들을 노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어쩌면 당신의 아이는 강아지보다 무지하고 비겁한 당신을 더욱 무서워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전 05화 엄마와 함께한 5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