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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an 19. 2021

엄마와 함께한 5일

개 손주들도 손주인가 봐.



내가 퇴원하고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자 내 강아지들은 나보다 엄마를 더 반겼었다. 어랏, 내가 예상했던 눈물 젖은 재회는 나 혼자만의 상상에 불과했구나 싶어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내가 없던 5일 동안 엄마와 아주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엄마가 시골집으로 내려간 후, 아이들 저녁밥을 챙겨주고 아이들이 맛있게 저녁을 먹는 것을 지켜봤다. 이 아이들을 지켜줄 사람은 나뿐인데, 내가 아파서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미안했다. 약간 눈물이 나서 아이들을 좀 안아줄까 했더니 어느새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간식이 들어있는 서랍장 앞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동안 간식을 못줬으니 간식을 좀 줄까 하고 서랍장을 열었더니, 남아있는 간식이 몇 개밖에 없었다. 분명 간식 통을 다 채워놓고 갔는데, 엄마가 간식을 많이 줬나? 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줬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고 또다시 간식이 있는 서랍장 앞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이것은 절대 우연 일리가 없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혹시 애들 간식 얼만큼 줬어?”

“간식 별로 안 줬는데. 많이 주지도 않았어.”

“그래? 이상하네? 그럼 언제 간식을 줬는데?”

“아침 먹고 한번, 점심때 한번, 저녁 먹고 한 번은 줬지.”

하아. 그럼 그렇지. 내가 없던 5일 동안 이 두 녀석은 엄마를 어떻게 요리했는지 식후 디저트 개념으로 간식을 받아먹어 왔던 것이다.

“아 그리고 내가 뭐 빵이라도 먹으면 빤히 쳐다보는데 우에 한입도 안주노. 쳐다볼 때마다 쪼매씩 줬지 뭐”

그랬다. 이 두 녀석은 씨알도 안 먹히는 나와는 달리 빤히 쳐다보기만 하면 간식을 챙겨주는 엄마를 이렇게 이용했던 것이다. 

“엄마, 나는 애들 간식을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안 줘. 목욕하고 나서 한번 주고, 산책 못 가는 날에나 한번 줄까.”

“아이고, 이 독한 년. 개들이 그래 빤히 쳐다보는데 니 혼자 목구멍에 넘어가드나?”


입원 첫날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애들 호빵 줘도 되나?’

엄마의 문자에 나는 이렇게 회신했다.

‘어. 줘도 되는데 조금만 줘야 해’

아마 엄마는 내 문자에서 ‘줘도 되는데’만 읽은 게 틀림이 없었다. 

‘아빠가 애들 버릇 나빠진다고 주지 말란다. 아빠 가면 줘야겠다 ㅋ’

‘ㅋ’에서 예상했어야 했다. 강아지들에게 간식을 줄 생각에 한껏 신난 엄마의 마음을. 


낯을 가리던 꽃님이는 엄마의 간식 공세에 무너져 내렸다. 엄마가 누워있으면 어느새 엄마 옆에 앉아서 엄마 얼굴을 핥아주었고, 봄이는 엄마 품속을 파고들었다. 개들이 우째 이렇게 얌전하냐며, 양반이 따로 없다며 엄마는 내 강아지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중에는 강아지들 털도 빗겨주었고 노즈 워크 장난감을 꺼내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왜 내 강아지들이 5일 만에 만나는 나보다 몇 시간 만에 만나는 엄마를 더 반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실, 수술이 결정되고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내 강아지들을 케어하는 일이었다. 애견 호텔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펫 시터를 부르는 것도 내키지 않았더랬다.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길 밖에 없었는데 내심 걱정이었다. 엄마와 내 강아지들이 잘 지낼 수 있을까. 내 걱정과는 달리 내 강아지들은 엄마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마음껏 간식을 먹었고, 엄마는 입 짧은 봄이가 밥을 이전보다 조금 더 잘 먹게 해 주었다. 두 번 다시 아프면 안 되겠지만, 혹시 내가 장기 출장을 가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엄마에게 부탁을 할 생각이다. 아마, 엄마보다 내 강아지들이 더 기뻐하겠지. 엄마와 함께한 5일 동안, 내 강아지들은 뚠뚠한 강아지들이 되었고 나는 서둘러 다이어트 사료를 주문했다. 



엄마와 꽃님의 셀카, 아직은 낯선 두 사람


엄마가 보내온 사진 속 내 강아지들, 평소처럼 잘때는 함께.


뚠뚠해진 꽃님이. 몇달 간의 다이어트는 5일만에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엄마와 함께 한 5일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더 내멋대로인 봄이.



뚠뚠해졌지만 더욱 귀여워진 꽃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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