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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ul 07. 2020

슬픔은 고여있다.

나의 늙은 개가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2019년과 2020년 사이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년 6월, 나는 둘째 동생과 영국과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언제쯤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과연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더라도 해외여행을 갈 수나 있을지 그것조차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작년의 나는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올해 초 갑작스레 집주인이 집을 내놨고, 전세 매물이 없는 상황이어서 결국 집을 사게 되었다. 무엇보다 작년 이맘때 나의 오래된 반려견 복길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러니까 그녀의 유골을 시골집 과수원 한켠에 묻고 온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봄이와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고, 우리의 새 가족이 된 꽃님이의 활약에 그녀를 잃은 슬픔의 농도는 어느새 묽어졌다고, 조금은 흘러갔다고 믿고 있었다. 


얼마 전, 강아지를 목욕시키다 봄이 귀에 염증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동물병원을 방문했다. 보통 주말에 그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 한 시간 이상의 대기시간은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대기실에 모인 보호자들과 얼마나 기다리셨냐 이런 이야기들을 하며 기다리던 중 한 남자가 축 처진 푸들을 품에 안고 병원으로 뛰어들어왔다. 그의 옷에 묻는 변과 오줌을 보는 순간 나는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복길이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운전하며 병원으로 향하던 그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나의 울먹임에 힘겹게 내쉬던 숨을 멈추고 내 팔 아래로 고개를 축 늘어뜨리던 복길이의 무게와 내 옷에 스며들던 복길이의 오줌까지.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아둔함에, 부족한 나라서 미안한 마음에 흘러나오던 눈물에 겨우 운전을 해서 병원에 도착했던 그 일요일 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한 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들은 긴급하게 먼저 진료를 보는 그들을 보고 아무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그 남자 보호자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분이 손을 떨면서 들어왔다. 사시나무처럼 손을 떠는 그 여성분을 보자 왈칵 눈물이 났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병원이란 공간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게 되어 짜증이 난 봄이를 안고 나는 울기만 했다. 그때, 그 일 년 전 그 밤에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그래서 조금 더 일찍 이렇게 병원에 왔다면 우리 복길이는 아직도 살아있지 않을까? 복길이를 잃은 그 슬픔은 흘러간 게 아니었다.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고여있었다. 단지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일 년 전보다 조금 더 바빠진 일상에, 그녀보다 활발한 강아지가 우리 가족이 된 새로운 환경 덕분에 그 슬픔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뿐이다. 여전히 그녀는 내 곁에 없고, 그 슬픔은 언제든 봇물이 되어 터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결국 그 가족은 빨리 병원으로 달려온 덕분에 기운을 차린 강아지와 함께 돌아갈 수 있었다. 복길이를 꼭 닮은 강아지를 본 그날,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처음 복길이를 입양한 그 날, 낯선 환경에 와서 많이 두려웠을 복길이를 집에 두고 나와 둘째는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쉴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었다. 이토록 준비되지 않았던 보호자였다. 나는. 그 새벽 원룸 건물 밖으로 울려 퍼지는 강아지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들어갔었다.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나를 만나 복길이도 참 많이 고생을 했더랬다. 처음에는 산책도 잘 시켜주지 않았고, 장난감도 사주지 않았으며 배변 실수를 하면 혼내기만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길이는 그 작은 몸으로 나를 지켜주었고, 도둑이 들었던 그 날에도 그 작은 몸으로 나를 지켜냈고, 내가 긴 연애를 끝내고 매일 죽음을 생각하던 그 시간들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의 용감한 여전사였다. 


그녀가 떠난 지 일 년이 되어가는 지금 단 하루만이라도 복길이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많이 미안했다고, 그날 밤에 너를 두고 노래방에 간 것도, 장난감도 잘 사주지 않았던 것도, 처음에 산책을 잘 시켜주지 않았던 것도, 그리고 네가 아픈 것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도 미안했다고 이야기해주어야지. 또 고맙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어야지. 부족한 나를 언제나 기다려준 것에, 나를 항상 지켜준 것에, 네가 나의 가족이 되어준 것에,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준 것에 대해서. 또 많이 안아주고, 지독했던 그녀의 입냄새도 기억에 담아두고, 구수했던 그녀의 발 냄새도 실컷 맡고, 어릴 때의 초콜릿색 털 빛은 옅어졌지만 그녀의 곱슬했던 귀 밑 털도 조금 잘라두어야지. 절대 너를 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질투심 많던 그녀를 안심시켜주어야지. 그러니 이제 한 번쯤은 내 꿈에 나와주었으면. 나는 이토록 할 말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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