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이성의 고찰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항상 함께하듯, 인간의 마음도 양면성이 늘 존재하는 것 같다.
본성과 이성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은 이율배반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하루에 소소한 것부터 때론 중대한 것까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저녁에 떡볶이를 먹을까, 치킨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은
짜장면과 짬뽕을 둘 다 즐길 수 있는 짬짜면으로, 떡볶이와 치킨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세트메뉴로 수요층을 만족시킨다. 음식이야 두 가지 다 먹을 수 있지만, 보통 A 아니면 B 중에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은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나한테 이미 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것이 탐나고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한 기혼자들은 미혼들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고, 미혼자들은 기혼자들의 안정감을 부러워한다.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정답은 없다. 그저 두 가지 다 해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일 뿐이다.
A와 B 중 가지 못하는 길에 대한 욕망과 미련은 늘 마음에 남아있기 마련이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본능적인 욕구만을 생각하면 사회적 규율을 어기거나 타인에 대한 존중 따위 개의치 않고 원하는 것을 모두 욕심내어 취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규율이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기에 이성적인 판단으로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갖기는 싫고 남주기는 너무 아까운' 소위 계륵(鷄肋).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의 마음이 고맙고 좋지만, 사귀기엔 내키지 않고 책임지기는 싫어서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그런 상황들 말이다. 막상 그 사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면 아쉽고 질투 나서 자신의 곁에 늘 머물러주길 바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본능으론 이 사람도 내 곁에 두고 싶고, 저 사람도 내 곁에 두고 싶지만 이성적으로는 지켜야 할 규율이 있고, 도의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제삼자가 보기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지만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깊은 고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인간으로서 본능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개개인의 인생만을 보면 원초적인 본능을 억제하는 삶이란 아쉬움을 남긴다.
때론 이러한 내재된 욕망들은 종종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대중들은 도의적인 상식선이 무너지는 작품을 보면 불쾌하기도, 언짢기도 하지만 깊은 곳의 본능적 욕구를 건드려주는 파동이 마냥 싫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억눌린 본능을 마음으로나마 표출함으로써 대리충족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관계망을 포기하고(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을 포기한다면) 본능대로 살겠다고 한다면 개인의 선택이니 스스로가 감내하면 그만일테니까.
본능과 이성사이에서 흔들릴 때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본능이 중요하다고 해서, 타인에게 해가 되거나 위협이 될 정도의 욕구를 충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건 어느 정도 인간세계의 최소한의 룰이다.
위협되지 않는 선에서 본능과 이성을 넘나드는 줄타기를 하는 것은 자신이 감내하면 되지만, 그 이상은 타인에게도 고통을 줄 수 있으니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본능을 이겨내 선택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있을 것이고, 이성을 외면하고 선택한 본능적인 판단으로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불공평한 것도 맞고 시작점이 다른 것도 맞지만 그럼에도 공평한 것이 있다면
세상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부분에서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