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중 슬럼프에 대하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기 시작한 지 어느덧 6개월이 넘어간다.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나아진 것은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토닥여주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치료를 통해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은 꽤나 신기했다.
신체적 반응은 약물치료로 효과가 더 뚜렷했고, 상담과 더불어 치료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회복한다는 것은 약물치료와 상담을 하지 않고도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잘 견뎌낼지 걱정이 된다.
의사 선생님은 늘 적극적으로 치료해주시려고 한다. 상담받을 때마다 칭찬과 용기를 아낌없이 주신달까. 그래서 치료받고 온 날은 마치 '멀쩡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약물치료와 상담의 효과를 느끼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처음 상담보다 나아지고 있는데 이것을 멈추었을 때도 유지가 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은 임의로 약을 안 먹어보기도 했다.
심리효과인지 약을 안 먹으니까 신체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바로 약을 다시 복용했다.
약물치료 자체가 주는 심리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사 선생님에게 너무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이런 마음이 들다 보니 병원에 가는 것도 출근처럼 의무감으로 가는 듯했고, 치료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그래서 어느 순간 예약을 하루 이틀 미루게 되었다.
회사에도 3개월, 6개월, 9개월 슬럼프가 있듯이,
치료 6개월 차가 된 내게도 슬럼프가 온 것 같다.
치료에도 치트키처럼 레벨업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조급한 마음 또한 내 치료에 이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를 배울 때 생각해 보면,
처음엔 보조바퀴를 달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하게 되지만 꾸준한 연습과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결국 혼자 탈 수 있게 된다.
보조바퀴가 있으면 수월하게 탈 수 있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는 탈 수 없거나 시도조차 하기 싫어질 것이다.
나는 이제 익숙한 보조바퀴를 떼어내어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과정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회복의 속도가 빠르면 좋겠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번 주 치료는 미루지 말고 슬럼프가 온 나의 감정을 의사 선생님께 솔직하게 털어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