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소소한 것부터 나름 거창한 것까지 다양하다.
- 비가 내리는 것(비를 몹시.. 싫어함)
- 갖고 싶은 물건을 산 다음날 세일을 시작하는 것
-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난 것
- 친한 친구와 이유 없이 서먹해지는 것
-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 나에 대한 섣부른 평가와 이야기들
등등.. 슬픔의 범위가 다양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모든 일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 참 많다는 것이다.
한창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연락 자체가 부담돼서 알람을 꺼놓을 때가 있었다. 그래도 친한 사람들에게는 상황을 설명해야 될 것 같아서 양해를 구하고 '공식적인 잠수'를 탔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평소처럼 즐거운 얘기를 했고, 내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어떤 치료를 받는지
어디가 어떻게 힘든지 물어보지 않았다.
"네가 오죽 힘들면 잠수를 타겠어. 뭐든 말하고 싶을 때 편하게 말해. 우리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담담한 말은 꽤나 위안이 되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아는 관계들은 내가 어디가 아프고 왜 아픈지, 치료를 왜 받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관심받는 존재인줄 처음 알게 되었고, 걱정을 가장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채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싶었다.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아서 아픔이나 슬픔을 이해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나 또한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애초에 본인 말고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재밌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일부 지인들이 뱉어내는 말은 나를 슬프게 했다.
라떼1: "근데 그.. 우울이라는 거 말이야. 나는 솔직히 우울하다는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 바쁘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우울하고 뭐고 생각할 틈이 없던데"
라떼2: "그럴수록 의지를 가져야 해.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도 요새 있잖아~ 블라블라블라"
라떼3: "운동을 해야 돼. 그냥 누워있다 보면 계속 그렇게 늘어지게 된다니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나약하고 의지박약인 사람인건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어 힘들었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 우울증은 내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어서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약하고 의지가 없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어쩔 수 없다.
나를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하고만 지낼 수 없으니까.
어찌 됐던 저들도 '인생의 라떼'로서’ 각자 나름의 충고와 위안을 해준 것이겠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움이 안 돼서 문제지).
중요한 것은
나는 회복하고 있고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중요한 존재가 아닌 사람들이)
뱉어내는 말에 더 이상 흔들리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