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정신건강의학과
드디어
정신건강의학과 예약일이 다가왔다.
처음 병원에 방문했을 때, 생각보다 평범한 일반 병원(?)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들었다.
(드라마를 너무 봤는지, 정신건강의학과 특유의 무언가 분위기가 무겁고 압박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음)
안내에 따라 이것저것 검사를 했고(나는 *풀배터리 검사는 하지 않았고, 우울 불안 증상 등에 관한 검사를 했었음), 의사 선생님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는데 스스로 치료를 결심하고 병원에 방문한 것에 대해 격려의 말을 해주셨다.
*풀배터리 검사란, 종합심리검사라고 하며 소요시간은 3-4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심리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사(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검사를 수행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기 전, 블로그나 유튜브를 이리저리 검색해 보면서 나도 모르게 편견이 생겼던 것 같다(정신건강의학과는 상담센터와 다르니까 너무 기대하지 마라, 진단을 위한 피상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니까 공감적인 이해는 없을 수 있으니 참고해라, 의사들 말투도 차갑고 진료시간도 길지 않다 등등).
그동안 수많은 의학드라마를 즐겨보면서, 인간적이고 나만을 위한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환상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엄연히 '주인공 한정적인' 드라마적 허용이고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도 사람이고, 게다가 정신건강으로 힘겨워하는 환자를 대면하는 일은 에너지 소진이 클 것이라 생각했어서 어느 정도는 기대를 내려놓고 각오하고 있었다.
"검사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글몽이님이 스스로 병원에 오는 것을 결심한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신 거예요. 검사결과를 보면 글몽이님의 현재 증상은~"
예상대로 공황장애까지는 아니지만 공황증상과 *상세 불명의 우울 에피소드 진단을 받게 되었다.
*상세 불명의 우울 에피소드
기준이 모호하나 분명한 우울상태
상세불명의 우울 에피소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 기다리자'라는 의미가 아닌 증상이 환자의 기능을 저해하고 있다면, 진단의 명확성과 관계없이 치료해야 함을 의미
(출처: Depressive e.. : 네이버블로그)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하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경험들이 쌓여
현재 신체증상으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바로 나의 과거의 경험으로 거슬러 가보기 전에, 현재 나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하는 상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셨다.
나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저 내 성향이 예민하고 민감하다고 생각했는데 애써 혼자 스트레스를 외면하고 인지하지 않으려고 했었던 회피적인 것이라는 걸 알았다.
계약직 고용관계에서 비롯되는 불안정한 미래(인간은 막막하고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고 함), 직장생활을 위해 유지해야 되는 최소한의 인간관계(대부분의 일이라는 게 혼자서 할 수는 없지만 팀협업으로 진행되는 업무가 대다수라 원하지 않아도 유지해야 되는 인간관계들이 부담스러웠음)가 나를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저는 제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유별나게 크다고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그렇지만 글몽이님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고 누구나 받는 스트레스라고 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건 개개인마다 달라요."
의사 선생님은 내가 현재 받고 있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해 스스로를 인정해 주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했다.
1. 자신이 남들보다 모자라고 나약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것.
2. 공황증상과 우울이 있음에도 직장생활을 책임감 있게 하려고 하는 자신에게 잘 버텨왔다고 위로해 줄 것
"글몽이님 자신을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부터 시작하고, *나비포옹을 해주면서 토닥토닥 위로해 주세요.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도 도움이 될 거예요."
첫 진료를 마치고 안도감이 좀 들었는데,
첫째로 내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해 가졌던 편견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의사 선생님이 단순 진료를 위한 것이 아닌 증상 완화를 위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음)
둘째는 진료와 상담을 함께 해주어서 별도로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감이 덜 했다. 그리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증상이 더 빨리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첫 진료에서 약물처방을 받았고 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나비포옹을 생각하면서 불안하고 긴장될 때마다 심호흡하면서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있다.
상담센터에서의 상담이 불편하고 꽉 막힌 마음의 매듭을 느슨하게 해 주었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치료는 그 느슨해진 매듭이 너무 늘어지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해 주고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