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텝은?
논문 예비심사가 끝나고 모아진 데이터를 토대로 결론을 작성하는 일만 남았다. 웬만하면 통과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응원도 있었지만 본심사에서 어떤 심사를 받을지는 알 수 없고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기에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4학기 과목 중 가장 많이 배웠고 재미있었던 임상실습을 무사히 진행하면서 동시에 재활심리학이라는 과목도 틈틈이 신경 써야 했다. 재활심리학에서도 역시나 발제가 있었는데, 정해진 논문에 대해 발표하고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 준비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희귀 질환에 대한 주제를 다룬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었고 나는 *프라더 윌리 증후군(PWS)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과제를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질환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프라더 윌리 증후군(PWS)
심한 과식증(Hyperphagia), 분노 폭발(Temper outbursts), 불안(Anxiety) 등 다양한 행동 문제를 포함하는 특징적인 행동 표현형과 관련된 희귀한 신경발달 유전적 질환으로 PWS는 약 15,000~30,000명의 출생아 중 1명에게 발생하는 희귀 유전성 신경발달 장애 염색체 15q11.2~q13에 있는 부계 발현 각인 유전자의 손실로 인해 발생한다.
무튼, 내가 맡은 주제에 대한 구글링과 번역을 통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발제 자료는 금세 만들 수 있었다.
다른 과목과는 달리 학생들이 발표 주제를 듣고, 발제자에게 반드시 질문을 하게 되어 있어서 더욱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을 대충 알았다가는 들통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학생들이 질문하는 것은 본문 안에서 질문하는 걸 테니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교수님의 질문이다.
동기들은 예상대로 본문에 나온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요청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배려 차원에서 심도 깊은 질문은 안 해준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동기들의 질문타임은 넘어갔고 이제 대망의 교수님의 질문 시간이 다가왔다.
교수님은 논문에 나온 통계 자료에 대한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셨는데 사실 통계를 해석하는 거에 약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넘어갔는데(...) 귀신같이 그 부분을 지적하셨다. 진땀 흘리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뱉어댔다.
다행히 완전한 헛소리는 아니었는지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미흡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고 수고 많았다는 마무리 멘트를 하시며 발표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외에도 인지재활을 위한 치료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과제도 있었는데 인지재활은 주의력, 기억력 등의 인지기능을 영역별로 나누어 개선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여기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교수님께서 현장에서 사용하는 치료 도구의 예시를 보여줘서 참고할 수 있었다.
치료 프로그램과 도구에 대해 소개할 때, 애플리케이션 형식으로 만들어온 능력자도 있었고 당장 현장에서 사용해도 좋을 정도의 퀄리티로 완성해 온 동기들도 상당수 있었다. 뛰어난 능력자들 사이에서 충격을 받았지만 배울 점이 많아서 좋았다. 나는 보드게임판 실물을 제작했고 낱말 퀴즈를 내서 맞추면 칸을 이동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아서 기존의 형식에서 방식을 조금 변형한 정도로만 했는데 동기들에 비해 뭔가 좀 미흡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이렇게 4학기 과제와 시험들도 무사히 마무리지었고 논문 본심사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았고 연구대상자들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었기에 모집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결측 데이터값이 생각보다 적게 나와서 예상했던 표본만큼 결과가 잘 나왔다. 통계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서 주변에 통계를 잘 다루는 지인에게 배워가면서 어찌어찌 작성할 수 있었다.
영문 초록을 작성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우선 챗GPT의 도움을 받아 초안을 만들었고, 논문작성 경험이 많은 박사과정 중인 선배에게 물어서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문장을 수정했다. 덕분에 논문의 핵심 메시지를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논문의 형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카피킬러를 돌려봤다. 혹시나 표절률이 높게 나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지정한 기준 안에 들어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대망의 본심사 발표날이 다가왔다.
본심사 당일, 예상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긴장감이 점점 커졌다. 밖에서는 동기들이 서로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계속 자료를 훑어보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했다. 손이 떨리고 목이 타긴 했지만 반복해서 연습했던 발표 내용을 되새기며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대기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처음 몇 마디는 조금 떨렸지만 곧 차분하게 준비한 내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질문 시간이 되자 심사위원 중 한 분이 결과에 나온 통계를 조금 명확하게 수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했지만 다행히 결론을 바꿀 정도의 큰 수정은 아니었다. 조금만 손보면 되는 부분이었기에 안심했다. 발표가 끝나고 평가를 마무리하는 순간 긴장이 풀려 안도감이 밀려왔다. 수개월간의 고된 연구 과정과 통계 분석의 어려움들이 머릿속에 지나가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도교수님께서도 “일하면서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논문 결과도 잘 나와서 대견하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 말 한마디에 연구를 진행하며 느꼈던 피로와 걱정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논문은 최종적으로 통과되었고 나는 5학기 정규 과정을 마치지 않고 4학기 만에 조기졸업할 수 있었다.
긴장과 걱정, 시행착오와 배움, 주변의 도움까지 쌓여 만들어진 성취였다. 연구 과정에서 마주한 불확실성과 어려움 덕분에 이번 경험은 단순한 학업적 성공을 넘어 나 자신에게도 한층 더 자신감을 주는 순간으로 남았다. 이제 나는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