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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Jul 04. 2022

형완의 임무(3)

자기부정

“이 화면에 나오는 남자는 당신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화상의 남자는 골목에서 차를 정차한 채로, 수첩을 쥐고서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비가 내렸다.


“... 글쎄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수첩을 든 걸 보니 일하는 중인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 사람은 제가 아닌데요.”


“당신의 이름은 수중입니다. 직업은 탐정으로, 불륜 조사 의뢰를 받고 어떤 남자를 미행 중에 있습니다. 3일간 잠복하며 동선을 파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는 모양입니다.”


짙은 차창 너머 보일 듯 말 듯 한 수중의 눈길은 추적 대상인 듯한 남자를 좇았다. 검은 우산을 쓴 남자가 수중의 시선 끝을 따라 지났고, 한참 뒤 수중도 차를 움직였다.


“이 남자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을까요?”


형완은 잠깐 망설이다 답했다.


“3일간 소득이 없었다면 남자는 무고할 것 같군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어, 좁고 낡아 보이는 방이 나왔다. 방 안에서는 어린 남자아이 셋이서 모여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당신의 어린 시절입니다. 친했던 두 형제와 함께 자주 놀곤 했었지요?”


형완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친근감에 저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저 놀이는 잘 모르지만... 친했던 형제가 있기는 했어요. 그러고 보니 이 방이 그 형제네 집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무렵 정현과 정후 형제는 당신과 매우 친했습니다. 그중 정후가 물놀이 사고로 죽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교류가 끊어지게 됐고요.”


화상 속 아이들은 카드 게임에 즐겁게 몰입해 있었다. 때때로 크게 웃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하며.


“선생님, 저는 어째서 이 시험 대상자로 선정되었나요?”


서진은 잠깐의 침묵 후 답했다.


“임상시험 대상은 채산시에 거주하는 20세부터 50세 사이의 성인 중에서 선정되었습니다. 직업, 살아온 이력 등 샘플 내에서 최대한 다양성을 유지하려 노력했고요. 대상자들의 삶의 궤적이 꼭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예를 들면 같은 학교를 나왔다던가 하는 경우는 있지만요.”


화면은 이번에는 진료실로 보이는 듯한 곳 내부를 비추었다. 의사와 마주 앉은 남자는 필시 수중이었을 테지만, 화질 때문인지 형완처럼 보이는 듯도 했다. CCTV처럼 보이는 화상에 음성은 없었으나, 두 사람이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경찰로 근무하던 당신은 큰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나중에는 심한 우울증으로 발전하여 일을 그만두었고요. 어쩌면 내적인 기질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이후 당신은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사립탐정 사무소에 들어가기에 이릅니다.”


서진은 잠깐 쉰 뒤 말을 이어갔다.


“삶은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선택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삶의 와중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하기도 합니다. 자아 정체성이 명확하게 확립된 경우에도, 세계가 바뀌거나 어떤 사건을 만나면 이는 순식간에 변화하기도 합니다.”


“이 화면 속 사람은 저인가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화면은 지금의 수중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비추고 있었다. 어느 여자와 식사하며 대화하는 수중의 얼굴에서 슬픔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으며, 때때로 웃기까지 하였다.


“언제나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지요. 나보다 더 즐거운 사람, 더 많은 부를 가진 사람, 더 잘생긴 친구, 진심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기뻐하는 친구, 여자를 잘 만나는 친구. 그 와중에 정작 저 자신은 돌아볼 일이 없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험이 나를 만들어 가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번 임상시험이 자신을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음량이 낮아 잘 들리지 않았지만 화상 속 수중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듯했다. 글쎄 그렇게 돈이 많고 잘 사는 부부인데도 서로를 의심한다니까. 서로 다른 사무소에다 의뢰를 했지 뭐야. 나 같았으면 그렇게 잘 살면 걱정거리 하나 없을 텐데. 하긴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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