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소를 하다 실수로 창문을 쳤다. 쾅!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창문 앞에 줄줄이 놓아둔 돌들이 떨어졌다. 깨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돌을 모은다. 여행한 나라의 수만큼은 아니지만 내 생활공간 곳곳에는 외국에서 가지고 온 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여행 중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장소에 머물 때면 그곳의 돌을 주워오는 습관이 생겼다. 여권에 스탬프를 찍듯 내가 다닌 여행지를 수집하고 기억하는 의미이다.
“아니 무슨 돌이 이렇게 많아요? 예쁘지도 않네. 어디에서 이런 걸 주워 와요?”
책상에도 침실에도 장식장에도 부엌에도 화분에도 돌이 놓여 있다. 돌은 나에게 여행의 시간이고 기억이다.
알래스카 빙하의 돌
앵커리지에서 출발하는 알래스카 빙하열차를 타고 푸른 하늘 아래 하얀 만년설을 보면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더 이상 다닐 곳이 없을 만큼 다닌 것 같아도 알래스카는 다시 가고 싶었다. 한 곳을 다섯 번쯤 가니 알래스카의 대자연도 태백산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앵커리지를 다시 방문한 건 빙하 크루즈를 타기 위해서였다. 현지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안내소에서 빙하 하이킹 안내책자부터 챙겼다. ‘여름에도 빙하 하이킹이 가능하다고?’ 지난겨울에 왔을 때 온 세상이 하얀 눈밭에서 빙하계곡을 따라 하이킹한 짜릿한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렇게 푸른 여름에 하는 하이킹도 궁금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빙하를 가까이 보면서 걸었는데 지금
은 어느 정도 깊은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빙하 하이킹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연 스스로 지형을 밀어내고 깎아내면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도 인간은 또 귀찮게 찾아간다. 한 시간가량 산길을 따라 걸어가니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접근금지 표시 줄이 길게 쳐져 있고 그 앞에 포토존 간판이 세워져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하얗고 파란 빙하를 바라보아야 한다.
만년설이 그냥 하얀색 눈 표면이라면
빙하는 하늘색이 굳은 고체 덩어리 같다.
오래전에는 내가 선 곳까지도 대부분 빙하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년 빠른 속도로 녹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멀리에서나 빙하를 바라볼 수 있다. “저기까지 들어가는 투어는 전문 가이드와 함께 복장을 모두 갖춰 입고 안전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때 나는 그 지점에서 바라본 알래스카 빙하가 내 마지막 빙하여행이 될 것을 예감했다. ‘오늘 이후로 더 이상
알래스카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이 순간을 무엇으로 기억해야 할까.’ 생각하며 언덕을 돌아 내려갔다. 이 느낌을 사진에 잘 담을 재주도 없고, 알래스카 하얀 눈을 담아갈 수도 없고, 빙하 덩어리를 깨서 가져갈 수도 없다. 그때 생각난 것이 돌이었다.
멀리 계곡이 보였다. 빙하가 흘러내린 물에 어제 내린 빗물까지 더해져 깎이고 다듬어진 자잘한 돌들이 태양빛
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계곡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잠시 앉아보았다. 차가운 돌에서 태양을 머금은 따스함이 설핏 느껴졌다. 지금 이 계곡의 돌들에는 한자리에서 묵묵히 여러 계절을 보낸 자연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여름에는 녹아내리는 빙하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겨울에는 하얀 눈의 가족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이곳의 모든 시간을 간직한 돌들을 오늘 나는 가져간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바닥을 보니 가져가고 싶은 돌멩이가 많았다. 배낭 무게를 생각하면 큰 것 한 개보다 작은 돌 여러 개를 가져가는 게 낫다.
돌을 가방에 넣으면서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기억 창고에 함께 저장한다. 지금 이 순간 물소리와 함께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는 이 계곡에서 매일 울려 퍼지는 자연의 대합창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된 이 순간의 모든 느낌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은 앞으로 사진이 아니라 가슴으로 담아온 돌이다.
주운 돌의 모양은 가지가지다. 가능하면 예쁘게 생긴돌을 찾지만 모양보다 돌을 손에 쥐었을 때 받은 첫 느낌이
중요하다. 그렇게 시작된 돌 수집은 캐나다 로키, 콜로라도 레드락, 그랜드캐니언, 아치스캐니언, 브라이스캐니언에서도 계속되었다. 나는 모든 돌에는 그만의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길에서 만난 돌에 가격은 없지만 내가 주운 돌에는 가치가 있다. 돌들의 에너지와 나는 함께 공명한다. 각각의 장소에서 새겨진 돌의 시간을, 그 깊은 세월을 파동으로 느낄 수 있다. 옷과 신발을 버린 자리에 돌을 채워서 오는 이유다.
히말라야 최북단, 라다크의 돌
30대 여행에서 인도 갠지스강을 만났다면 40대 여행에서는 인더스강을 만났다. 2019년 9월, 나는 18년 만에 인도를 다시 찾았다. 목적지는 히말라야산. 인도 북쪽에 있는 인더스강에 발을 담그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 때문이었다. 티베트에 있는 수미산(카일라시산)에서 발원한 인더스강은 세계 4대 문명이 시작된 곳이며 티베트불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강이다.
“일정 중에 인더스강에서 헤엄칠 시간이 있나요?” “물이 차가운데 수영이라도 하시려고요?” “아뇨, 그냥 발을 좀 담그고 싶어서요.” “일정상 인더스강을 여러 번 지나가기는 하지만 강가로 내려갈 시간은 없어요. 이곳 라다크Ladakh는 고산지역이라 8월까지 래프팅만 가능해요.” “저는 그냥 강에 두 발만 담그면 돼요.”
티베트 불교사원에서 7년간 승려생활을 하고 지금은 프랑스어와 영어 가이드를 하고 있는 청년이 피식 웃는다.
아침부터 라다크 지역의 도시 레Leh에서 달려온 버스는 좌우측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여러 개의 강줄기를 보여주고 있다. 가이드의 말처럼 인더스강을 내려다 보고 가는 건 맞지만 중간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는 건 말이 안 된다. “저 강이 인더스강인데 어떻게 내려가시겠어요? 내려간다고 해도 다시 올라오면 오늘 오후 일정은 모두 포기해야 해요.” 다른 일행이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정을 바꿀 수도 없다. 아쉬운 마음에 멀리서 흐린 강물만 카메라에 담았다.
라다크 사람들은 갠지스강보다 인더스강을 더 신성하게 생각한다. 불교와 힌두교라는 종교의 차이만큼이나 신
성시하는 강이 다르다. 수천 년 전 고대문명이 태동할 때부터 라다크 지역에서는 불교문화가 번성했다. 바로 인더스 강 때문이다. 차가 비포장도로를 툴툴거리며 달리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다. 그렇게 화장실도 없이 한참을 달리다 작은 산골마을에 멈춘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달라이라마가 라다크에 오면 다녀갈 정도로 중요한 사원으로 티베트불교 신자라면 꼭 들러야 하는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걸어가는데 앞에 검은 바위산이 우뚝 서 있다. “혹시 저 산 아래로 흐르는 물이 인더스강인가
요?” “네, 맞아요.”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이 갠지스강 근처에서 종교의식을 치렀다면 티베트불교의 본고장인 라다크 사람들은 인더스강변에 사원을 만들고 종교생활을 했다
유서 깊은 사원을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둘러본 후 나는 잰 걸음으로 강가로 내려갔다. 히말라야의 가을. 9월이지만 강물은 3분 이상 발을 담그고 서 있기가 힘들 만큼 차가웠다. ‘여기 물이 찬 게 아니라 내 몸의 에너지순환이 잘 안 되는 건 아닐까. 몸 안의 열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으니 자주 아프고 지금 강물에 내 발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평소에도 손발이 차긴 한데 일단 참아보자.’ 이런 신성한 물에서 참아야 내 몸도 치유되고 좋아질 것 같았다.
나는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변 구루들처럼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두 손을 하늘로 올렸다. 어느새 일행도 따라서 강으로 내려왔다. 나는 신발을 챙겨 신고 강변을 거닐며 돌을 줍기 시작했다. 인더스강가에는 무구한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이거 다 가져가면 인도 세관에 걸리지 않을까.
“이건 어디에서 온 돌인가요?”
돌이 많아지고 모양도 다양해서 이제 소속을 모르겠다. 따로 메모를 해두거나 내 나름의 원산지 표시를 해두었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과연 내가 돌 하나를 주우면서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 돌에 내가 담고 싶은 의미는 무엇일까. 반출금지 경고판이 없는 한 그곳의 돌을 챙긴다. 나에게 돌은 지구의 선물이고 여행의 흔적이다. 마치 우주 은하계를 떠돌던 원석이 내가 사는 공간으로 날아 들어온 것처럼 나는 이 돌들을 지킨다. 그런데 청소를 하다가 행성 중 몇 개를 떨어뜨린 것이다. 파괴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돌을 더 여행가방에 담아올지 모르겠다. 나에게 돌은 그냥 돌멩이가 아니라 추억의 상징이고 내가 사랑한 기억들의 결정체이다. 돌은 나를 다시 여행하게 하고 미소 짓게 한다. 침대 옆에 두고 보기도 하고 손에 쥐고 잠들기도 한다. 그러면 해변의 파도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돌도 있다.
세상의 모든 돌은 위대하며 아름답다. 그렇게 나는 알래스카 빙하물이 흘러간 돌, 인더스강물에 깎인 신성한 돌,
로키의 대자연에서 튕겨져 나온 돌, 아이슬란드 빙하 섬에서 주운 돌, 하와이 바닷가에서 건진 현무암, 세도나의 붉은 바위에서 쪼개진 돌 등을 집에 가져와서 느낀다. 지구라는 행성에 남겨진 작은 흔적이지만 우주의 의미를 품고 나를 만나 같이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