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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Oct 12. 2016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1 블루 재스민

망상, 허영, 우울 그리고 감각


허영에서 비롯된 망상

고아였으나 입양되어 부자와 결혼까지 했던 자넷은 본인의 허영심을 대변하는 이름인 재스민으로 개명한다. 그러나 부자인 줄 알았던 남편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해온 사기꾼이었으며,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FBI에 직접 남편을 신고한다.


모든 재산은 가압류 당하고 당장 집 한 채 없이 거리에 나앉게 된 재스민. 급기야 아들까지 집을 나가자 크게 상심하여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헛소리와 혼잣말을 지껄일 정도로 심신이 미약해진 상태에 이른다.


재스민은 생존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렸을 적 함께 같은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던 여동생 진저의 집으로 찾아간다. 진저는 전재산을 형부에게 맡겼다가 사기를 당한 뒤 남편과 이혼 후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작은 집에 언니까지 도맡아 살기엔 빠듯하지만 진저는 선뜻 방 하나를 내주고 언니인 재스민이 새로운 삶에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그리 좋지 않은 집과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도 최선을 다 하는 진저.


재스민은 제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좋은 직장, 좋은 옷, 그리고 좋은 사람만을 선호하며 아직도 부유했던 시절의 허영에 빠져 산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새로운 남자 드와이트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신분과 과거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그를 현혹한다. 이 둘은 결혼 전까지 갔다가, 재스민의 전남편에게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이자 동생의 전남편의 칠리의 폭로로 모든 거짓이 들통나 파혼에 이르고, 재스민은 다시 동생의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망가진 삶을 인정할 수 없어 또 다시 현실을 회피하려 거리로 나온 재스민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대상없이 허공에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재스민 vs 진저

극 전반부에 걸쳐 날카롭게 드러나는 재스민의 불안정한 심리와 감정 기복은,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동생 진저의 삶으로부터 비롯된 위트로인해 조금 씩 무뎌진다.


좋지않은 형편과 좌절감을 주는 환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진저는 부유하거나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름의 행복을 누리고 산다. 오히려 사회적 기준으로는 약자로 분류될 수 있는 싱글맘 진저가 어떻게 타인의 결함을 포용하고 넘치는 사랑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일까.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를 지향하지 않는 삶이 그녀를 행복하고 충만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뉴욕의 상류층으로 살며 고급 차, 비싼 집, 하이패션 등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던 재스민과는 대조적으로 작은 집, 낮은 연봉, 잘난 것 없는 남자 친구에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진저. 재스민은 이런 진저를 무시하고, 과거에 두고 온 영광에 기대어 현실을 부정한다. 최고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심은 현재의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재스민과 진저, 둘다 고아원 출신이다. 상대적으로 부(물질)와 사랑(정신)으로부터 결핍되어있던 두 아이들은 각각의 가치를 추구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부를 추구했던 재스민은 겉으로는 부유하나 안으로는 사랑과 존경이 없는 부부 생활을 이어오다 파국을 맞이하게 됐고, 진저는 사랑이 있는 삶을 살면서 하루 하루 버텨나간다.


*


이 둘의 차이는 만족의 기준이 자기 내부에 있느냐와 외부에 있느냐에서 찾을 수 있다. 재스민이 추구하는 물질적 풍요는 외부적 판단 기준에 의해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을 추구하는 근본적 이유는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100억짜리 좋은 집을 가졌더라도 이웃집이 101억이라면 만족하지 못한다. 99억짜리 집은 거들떠도 안보며, 102억짜리 집을 구하려 혈안이 된다.


반면에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내부적 기준에 의해 스스로 만족도를 결정한다. 정신적 가치는 물질적인 기준으로 그 수준을 나타낼 수 없다. 사랑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가? 도덕과 철학, 예술과 지성을 점수로 매길 수 있는가? 모든 판단과 기준은 자기 내부에 있다. 자녀의 성적보다는 건강과 인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자 친구의 재산이나 지위보다는 성격과 공감능력을 우선시 한다. 물질적인 것과 반대되는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충족시키면 되므로, 훨씬 행복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현실과 이상, 물질과 정신. 어떤 것이 긍정이고 어떤 것이 부정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데미안에서 다뤘던 아브락사스가 선과 악 사이의 균형을 관장하듯 우리 또한 손에 잡히는 것과 잡히지 않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전쟁이 된다. 병이 되고 비행이 된다. 세상은 어차피 혼돈의 연속이므로, 그 안에서 질서를 세워서 나름대로 정연한 삶을 살아야 한다.


두 자매는 추구하는 속성 외에도 삶의 균형에서도 차이가 난다. 재스민은 이상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현실을 다 버리고 살지만, 진저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소박한 꿈을 갖고 산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남자친구와의 행복한 데이트를 하고자 하는 작은 꿈들은 매일 현실에서 실현된다. 어떠한 속성을 추구하느냐 하는 문제는 개인의 자유이나, 삶과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균형과 조화는 개인의 능력이다. 아무리 좋은 이상도 실현되지 않으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실현되지 않는 꿈들이 지속되다 보면 그것이 곧 망상이 된다. 망상은 현실 너머에 존재하므로, 현실 안에 있는 자기(Self)는 절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재스민은 밤에 피는 꽃으로 단아한 외양과 어우러진 향기 덕분에 차로 음용하기에 좋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다기 안에 담긴 수줍은 재스민의 모습은 상류사회에 몸담았던 극 중 인물 재스민을 연상시킨다. 현실의 삶은 거의 낮에 이루어 진다. 하지만 재스민은 밤에 피어 홀로 이상적인 달빛을 즐긴다. 현실을 부정하고 높은 이상만을 쫓는 재스민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진저(생강)는 향과 맛이 독특하여 개성이 있으면서도, 다른 음식과 만나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 자기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음식의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더해준다. 극 중 인물 진저 또한 자기만의 독특한 가치관과 개성을 가지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가족의 화합과 연인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든다.



블루 재스민에 드러난 편집성 성격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재스민의 성격적 특징은 허영심과 우월감이라 할 수 있다. 이 두가지 특성은 모두 열등감으로부터 기인한다. 재스민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행여나 자신의 불충분성이 타인에게 발각될까봐 두려워 한다.


고아 출신으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유년기를 보낸 재스민에게는 <출신 성분>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 재스민은 이 근원적 결핍으로 인해 편집성 성향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유한 남성과 결혼하였고, 컴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치중하여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다.


극 중 동생인 진저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남편과 헤어지고 진저의 집으로 돌아온 재스민은 과거의 결핍된 삶으로 되돌아 온 느낌을 받는다. 특출날 것 없는 진저와 어린 아이들로 북적이는 좁은 집, 그리고 진저와 마찬가지로 특출난 것 없는 진저의 남자 친구까지... 지극히도 현실과 맞닿은 진저네 집은 예전 고아원에서의 삶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래서 재스민은 시종일관 의식적으로 진저-예전의 자기 모습-를 무시한다.


보통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양육된 아이들은 편집성향을 갖게될 가능성이 많다. 불안정한 양육자, 다혈질에 변덕스럽고 인색하기까지한 주요 대상자 아래서 성장한 아이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정서적으로 성숙해 질 수 없다. 양육자나 주요대상이 걱정과 고민이 많은 경우, 아이들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에 차선에 방치되고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믿을 구석> , <비빌 언덕>없이 자란 아이들은 의심많고 낯을 가리며 유머감각이 결여된 채 타인을 불신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어렸을 때부터 굳어진 의심이라는 습관은 이들을 고립되게 만들고, 망상에 빠지게 만들고 피해의식에 찌들게 만든다.


편집성 성격의 사람들이 갖는 자기표상은 양극적이다. 무능, 수치심, 창피 등으로 뭉쳐진 약한 쪽과 전능, 오만함, 당당함으로 가득찬 강한 쪽으로 나뉘어 수치심과 죄책감 사이를 오가며 어떤 쪽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도 사랑을 한다. 보통의 사랑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은 상대방을 이상화하고 자신과 동일시여긴다는 점이다. 때문에 믿고 의지했던 상대방에게서 조금의 결함이라도 발견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미움, 증오, 분노로 바뀐다. 그들의 결함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결함의 근원인 상대방을 자기 앞에서 지우려고 노력한다. 연애하는 도중에도 의심과 불신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이상화된 대상을 위해 오랜기간 인내하고 견디는 이들이지만 작은 결함에도 쉽게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다.



*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도 재스민의 편집성 성향이 잘 드러난다. 영화 초반, 남편이 잦은 외도와 부정 축재로 부도덕 적인 결함을 내보이자 재스민은 자신이 직접 FBI에 남편 할을 신고한다. 결혼 생활 내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써 자신과 동일시해 온 대상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모욕적이라고 느꼈기때문에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 것이다.


편집성 성격은 자기애적 성격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허영심과 시기, 질투에 취약한 이들은 수치심을 다루는 태도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낀 <나(자기, self)>로부터 도망치지만 편집성 성격은 수치심을 느끼게한 <대상>을 책망한다.


재스민은 자기애적 성향과 편집증적 성향을 모두 갖고 있다. 재스민은 고아 출신의 입양아라는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자넷이라는 본명을 재스민으로 개명하고 허영의 삶을 산다. 그러나 남편과의 삶이 실패로 끝나자 <남편을 신고한 자기>가 아니라 <부정을 저지른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그녀만 침묵했으면 허울뿐이라도 부유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재스민 또한 여느 편집증 환자와도 마찬가지로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부당한 권위와 맞서 싸우고 도덕적 청렴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특성 때문에 기어이 남편을 스스로 신고하고 만다.


또한 재스민은 누구에게나 가식적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타인에게 들키게 될 까봐 진심으로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경계 태세를 갖추고 타인과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재스민은 진저네 집으로 이사오고 나서, 운명처럼 <드와이트>라는 백마탄 왕자님을 만난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하고 땡전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겨 빠듯한 동생-그것도 같은 고아원 출신의 입양아인-네 얹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가 실망할까봐 온갖 거짓말로 신분을 속이며 자신을 포장한다.


편집성 성격의 사람들은 반사회적 성격의 사람들 처럼 권력에 집착하고 행동화를 방어기제로 삼지만 공감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고 실망할 상대방들에게 죄책감을 갖는다. 그래서 타인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지속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소비하게 된다. 항상 지쳐있고 만사가 귀찮아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편집성향이 짙어지면 이러한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피하기 위해서, 급기야 인간 관계로부터의 고립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누구든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누구나에게 피하고 싶은 장애물 하나 쯤은 있다. 좋아했던 사람으로부터의 거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한 수치, 정체성과 가치관에 상처를 입힐 정도의 모욕, 이유없는 분노와 계속되는 실패. 이 모든 것들은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다가 불시에 <열등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불쑥 불쑥 나를 찾아 온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아니다. 특히나 태어나서부터 경쟁을 시작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1등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사회에 나오기도 전인 가정에서부터 우리는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형제나 자매는 우리 인생의 첫 경쟁 상대가 되며, 부모의 사랑, 음식, 옷, 책, 인형 등 모든 것을 타겟으로 하여 싸우고 또 싸운다.


안타깝게도 파레토의 법칙에 따라, 승리자는 소수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절대 다수는 열등감으로 찌들어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열등감을 가진 절대 다수는 자신이 열등감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에도 열등감을 갖는다. 무조건 덮어놓고 피하려고만 한다. 그리고 승리자를 폄하한다. 영웅 나기 쉽지 않다.


열등 의식으로 가득찬 이들은 패배자의 타이틀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 타인과 사회가 만들어놓은 승리자라는 기준선을 통과하기 위해 헛물을 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확신이 없다. 이미 패배해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능력은 차순위로 밀리고, 좋은 차나 비싼 집, 명품과 학벌에 집착한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전히 <패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들은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허영과 망상으로 다친 마음을 달랜다. 현실과 망상 사이에서 교통 정리를 곧잘 해내던 관찰 자아 마저 없어질 경우, 편집성 성향은 편집증이라는 정신병질이 된다.


이쯤에서 던져볼만한 질문이 하나 있다. 허영과 망상이 꼭 나쁜 것인가?


*


인간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허영심과 우월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둘은 타인을 넘어서려는 동기(motivation)의 바닥에 존재한다. 자신을 이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허영심과 남들보다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대변되는 우월감은 과하지 않은 경우 목표 달성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들은 열등감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해 주는 방어기제로써 작용한다. 대부분의 열등감은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기(Self)에 생채기를 내게 마련이다. 일단 상처가 나면, 그 상처가 깊든 옅든 손 뻗으면 잡히는 빨간약이라도 빨리 발라야 한다. 오래되면 흉터로 남기 때문이다.


상처는 치료하면 되지만 흉터는 가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등감이 트라우마라는 흉으로 남기 전, 우리는 되도록이면 빨리 허영과 망상으로 빠져드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


마음의 치유를 위한 것이라고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속사정은 조금 찌질하다. 가장 쉬운 예로, 시험에 낙방했을 때 "더 어려운 시험에 붙어버리지 뭐.", 혹은 "금수저 붙여주려고 나를 일부러 떨어뜨렸나 보네."등으로 반응하는 편이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죽어 버릴까." 등의 자기 혐오(Self-hate) 보다는 그나마 비교 우위에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열등감은 등에 난 흉터와도 같다. 옷만 입고 있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흉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는 컴플렉스가 된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비밀이 많아진다. 생활에 제약이 생긴다. 거짓말을 하게 되고, 가식적인 태도 때문에 사람들과 멀어진다.


지금까지의 내 주장을 정리해 보자면 "허영이나 망상이 꼭 나쁜 것은 아니며, 열등감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자기 혐오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흉터를 깨끗하게 지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걱정과 고민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흉터가 없다는 상상을 해 보자. 당당히 드러내고 마치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흉터가 안보인다는 허풍을 떨어 보자.


실제로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사실을 알려주자면, <사람들은 나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것. 아마 내 등 뒤의 흉터는 그들의 눈에 정말로 안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너무나 버거운 고민거리들이 <괜한 짓> 일 수도 있다는 상상은 잠시나마 작은 기쁨을 선사해 준다.


사람들은 자기 안의 열등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열등감으로부터의 도피는 절대 타인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열등감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재스민 또한 자신을 구하기 위해 허영과 망상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 결국 재스민의 허영과 망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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