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야구를 보며 생각한 것들
뒷북이 취미인 내가 뒤늦게 최강야구에 꽂혀 시즌1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나는 굉장히 쓸데없는 순간에 집요함을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 토막 시간을 활용해 짬나는 대로 최강야구만 봐 댔는데도 첫 화부터 이번 주 방영분까지 전체를 정복하는 데 약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럴 일인가 싶지만, 나는 대부분의 장르에서 완전한 완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책은 반드시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의 정독을 완독으로 치고, 드라마는 반드시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정직하게 주행해야 속이 시원하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에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지 않으면 찝찝함이 오래 남는다. 예능도 예외는 아니라 3년의 시간을 한달음에 내달리고 말았는데, 한 호흡에 보다 보니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되어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다.
시즌 1의 초반부를 볼 때에는 최강야구 그러니까 몬스터즈의 멤버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미 성공적인 프로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차라리 그들과 맞붙는 아마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많은 것들을 이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체 왜! 이제 막 꿈을 키워가는 어린 새싹들을 죽기 살기로 이기려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당시의 나에게 언더독은 몬스터즈가 아니라 몬스터즈의 상대들이었고, 언더독을 응원하는 것은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라 가는 마음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하고, 또 해가 바뀌며, 나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직 가 보지 않은 이들보다, 미련을 남기고 돌아선 이들이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차츰 공감하게 된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재산으로 가진 젊은이들보다 매 순간 마지막을 떠올리는 은퇴 선수들의 절박함에 점점 더 마음이 쓰였다. 기죽은 표정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순간엔 내 가슴도 함께 뛰었다.
나이 든 선수들의 고군분투를 보며 어느새 내 마음속 언더독은 어린 친구들에서 몬스터즈의 멤버들로 옮겨갔고, 이 변화가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안을 전해 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언더독이라 생각했으나, 사실은 내가 더 많이 가진 쪽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미지와 무지에서 비롯된 가능성이란 희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로운 것일지 모른다. 지나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은 자들은 패배하고 또 패배해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밟히고 쓰러져도 패기롭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몬스터즈에 패배한 상대팀들이 조금도 안쓰럽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결국 지금의 몬스터즈 멤버들보다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좀 지더라도 괜찮은 거 아닐까? 나 스스로에게도 같은 말을 해 주고 싶다. 지금은 좀 지더라도 괜찮다고. 지금 내가 아무리 밟히고 쓰러져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나에겐 지금보다 강해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최강야구를 정주행 하다 비로소, 앞날이 아득하다는 사실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건너뛰거나 놓치는 일 없이, 정직한 완주를 향해 달리는 것. 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