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허상에 불과한가
금요 에세이에 쓰고 싶은 주제가 생각날 때마다 수첩에 제목을 적어두고 있다. 오늘 수첩을 뒤적이다 이 문장을 발견했다.
'보여지는 것과 실제 사이의 틈'
어떠한 이유로 이런 문장을 적어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가진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으니 일단 가져와 보기로 한다.
오래전부터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중 어느 쪽이 진짜인가.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정보를 신뢰할 만한 데이터로 받아들일 만한가. 반대로 남이 보는 나는 '진짜'로 받아들일 만한가. 이런 고민을 지속하다 보면 나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특정값을 도출해 낼 수 없음."
인간은 지독하게 단순한 듯하면서도, 미치도록 복잡한 존재이며, 그러한 존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 대상이 나 자신일지라 하더라도 건방진 오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백처럼 시인하고 만다.
타인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힘쓰려 했던 시간들을 지나 '오직 나',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 보기로 한다. 나를 위해 읽고, 나를 위해 쓰며, 나를 알아가는 데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착실하게 흘려보낸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자 비로소 심적 평안이 찾아온다. 인정 욕구의 노예에서 성취 욕구의 노예로 변모한다.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작은 가게의 사장이 되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고 굳게 믿으며, 나름의 기준에 따라 홍보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의 만족은 나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엄중한 현실을 알아차린다. '진짜'라고 믿는 모든 것은 결국 믿음 그 자체에 기인하며, '진짜'로 믿게 하는 것은 결국 '진짜'로 보여지는 것의 결과라는, 얕은 허무주의에 빠진다. 다시금 보여지는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보여지는 것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과연 메워질 수 있을까? 실제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이쯤에서 '진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보여지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돌고 도는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각한다. 우리가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사실은 회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오늘의 결론도 이렇게 쓸 수밖에 없겠다.
"특정값을 도출해 낼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