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최악
만약 누군가 나를 긍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내가 언제나 긍정보다 부정을 먼저 한 덕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친절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내가 인간에게 그 어떤 기대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내가 단 한순간도 이 세상을 아름답다 믿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너그러운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내가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서 돌려받지 못할 거라는 것을 각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낙관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내가 얼마나 깊은 비관에 물들어 있는지 모르는 탓이다.
나는 오직 최악에 대해서만 마음의 준비를 한다. 수십 번, 수백 번,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최악만을 생각한다. 직간접적 노출치료를 통해 최악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면, 나는 비로소 무적이 된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 진다. 최악을 희화화하는 단계까지 들어서고 나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은 참 낙관적이고 천진하며 생각 없이 밝아 보이는 군. 곱게 자랐나 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게 또 재미나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플로팅 방문자 리뷰에 가장 많이 달리는 글은 "사장님이 친절해요."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걸 보고 정색을 하며 얘기한다. "대체 손님들한테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단 한 번도 손님들에게 내 앞에서 리뷰를 써서 보여달라고 한 적이 없으니 남겨주신 리뷰는 그들의 진심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실제로 손님들에게 무척 친절하다. 친절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친절할 수밖에.
나는 손님들에게 단 한순간도 야속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그들에게 화가 날 일도 없다. 내가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이라서는 물론 아니다. 그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건을 왕창 사 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물건을 조심히 다루어 줬으면 하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곳은 장사를 하는 매장이니 누구라도 제한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다. 또한 누구라도 제한 없이 원하는 순간에 돌아 나갈 수 있다. 그들은 나에게 친절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고,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친절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런 관계, 나는 이 관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에 모든 해법이 있다. 사랑도, 우정도, 장사도, 모두 마찬가지. 기대하지 않는 것이 포기고 비관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매일 포기하고 매 순간 비관하는 사람이 될 테다. 내가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웃을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테다. 최악만을 생각하는 것이 최고만을 상상하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이 경험을 통해 입증되었으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악만을 생각할 테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행복을 쟁취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