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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의 일상을 조금씩 나누어 담기

2025.03.26. 수

by 감우 Mar 26. 2025

 귀하디 귀한 이틀의 휴무를 풀 스케줄 소화하며 바쁘게 보내고, 피로가 더 누적된 채로 돌아와 버린 수요일. 월요일에는 독서 모임하고, 은행 가서 서류 보완하고, 신용보증재단 가서 서류 제출하고 집에 오니 거의 다섯 시. 화요일은 백만 년 만에 동대문 가서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느라 집에 오니 여섯 시. 그래도 뭐, 이틀 다 나름 재미있게 보내긴 했습니다.


 이번 달 모임 책은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이었는데, 독서 모임을 통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 조만간 사유의 조각에 올려 봐야지. 동대문에 간 이유는 오래 간직하고 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한 샘플 재료를 구하러! 하나는 북커버인데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고 샘플링을 한 번도 안 해봐서 약간 막막한 상태, 다른 하나는 버려지는 띠지를 업사이클하는 아이디어인데, 수차례 샘플링을 해 보긴 했지만 들어가는 노동력과 할애되는 시간에 비해 상품 가치가 떨어져 보여서 막막한 상태.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다 제대로만 나온다면 꽤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그건 저의 역량에 달려 있군요. 


 아무튼 그리하여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휴무동안 사 온 것들을 부리고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최초 보증이 아니라 전환 보증 신청이어서인지 초스피드로 승인이 난 보증 신청의 다음 단계를 처리하느라 은행과 몇 차례 통화를 했고, 정산일이었던 어제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위탁 거래처 정산도 처리해야 했다. 남 줄 돈을 하루라도 밀리는 것은 정말이지 싫어서 일요일에 미리 정산을 하고 퇴근하려 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렸다. 화요일에 잠깐 출근해서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스케줄상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거래처에 양해 문자를 돌렸다. 다행히 모두 흔쾌히 이해해 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다 보니 오늘이 아빠 생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카오 송금하기로 20만 원을 송금했다. 돈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자주 보지 못하는 아빠와 뻔한 근황을 서로 묻고, 뻔한 대답을 주고받았다. "요즘 좀 어떠냐?" 아빠가 물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빠가 돈을 잘 벌어서 너 좀 밀어주고 그래야 되는데." 아빠가 말했다. "이제는 내가 잘 벌어서 아빠를 밀어줘야 할 텐데." 내가 말했다. "나는 밀어 줄 필요 없어." 아빠가 말했다. "나도 밀어 줄 필요 없어." 내가 말했다.


 언젠가 아빠가 말했다. 앞으로 우리 집 가훈은 각자 알아서 잘 살기로 하자. 부모님이 이혼을 결정할 즈음이었으려나. 나는 새로운 가훈이 꽤 마음에 들었다. 우리 모두는 지금껏 가훈을 퍽 잘 지키며 살아온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는 내가 아빠를 밀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밥 한 끼도 같이 못 먹으면서 고작 20만 원을 거래처 정산하듯 송금하며 생색내는 딸 말고. 나 같은 딸은 내가 생각해도 좀 정이 없는 것 같아. 이게 다 그 가훈 때문이야. 괜한 핑계를 갖다 붙여 본다.


 오늘은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물건을 제법 많이들 구매해 가셔서 매출은 나쁘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어왔는데 예쁜 게 너무 많아요.", "연남동 처음 와 봤는데 너무 좋은 경험을 하고 가요." 오늘 들은 귀한 고백들. 역시 플로팅 사장하길 참 잘했어. 그나저나 다음 달부터 수요일로 휴무를 바꿀 예정이라 수요일에 이런 매출이 나와 주면 곤란한데 말이지? 신소리 그만하고 이제 그만 집에나 가자.

다이소에서 사 온 미니 달항아리. 진짜 귀엽다.다이소에서 사 온 미니 달항아리. 진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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