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가 되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

by 감우

명품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를 뽑을 때 가장 선호하는 인재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닌, 명품을 많이 입어 본 사람이라고 한다. 글로 배우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도 사실은 재물이 아니라 경험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경험을 돈으로 사야 한다는 게 작은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물론 오늘 하려는 얘기는 돈 얘기가 아니다.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돈도 써 본 놈이 쓴다 뭐 그런, 직접 해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회사 다닐 때 나는 불만이 꽤나 많은 편이었는데, 부서 이동을 경험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불평을 토로하는 일은 너무나 쉽지만, 내가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 보니 그들만큼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직접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일단 첫 경험을 해 보고 나면 두 번째는 확실히 할 만해진다는 것.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진리였고, 역시 옛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내가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만큼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만 바뀌면, 이 시스템만 바뀌면, 너만 없어지면,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며 불평만 늘어가던 내게 "너나 잘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변화는 언제나 두렵고, 새로운 시작은 늘 불안을 동반하지만, 뭔가 변하기를 바란다면 맨몸으로 부딪쳐 넘어지고 쓰러져야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 그리고 일단 부딪쳐 보면, 결국엔 다 할 만한 일이라는 것.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던 일을 떠맡고 내 한계를 넘어 가능으로 바꾸어 놓았던 어느 날 새벽, 내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것도 할 수 있었어? 이것도 버텼어? 하면 하네? 그럼 이제 나가서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 더 이상 겁먹고 도망치지 마."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연차는 쌓이는데 실력은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정체감을 느끼다 선택한 부서이동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문제는 나였다는 게 결론이다. 회사가 나를 성장시켜 주길 바랬지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건 나였고, 변해야 하는 것도 나였고, 용기가 필요한 것도 나였다. 회사를 다니든, 퇴사를 하든, 가장 중요한 건 나였다. 더 이상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것만 바뀌면, 이 시스템만 바뀌면, 너만 없어지면 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어지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퇴사 이후의 세상을 피부로 경험하는 중이다. 역시나, 모두가 말하듯,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처럼, 회사 밖은 춥다. 많이 춥다. 남의 지갑을 여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는 건 회사 안에서 매달 꽂히는 월급을 받을 때는 알 수 없던 현실이다. 월급만큼의 돈을 내 힘으로 벌어들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만큼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퇴사 후 약 4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회사에서 5년 동안 하던 일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내 손으로 해냈다. 회사 안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직접 부딪치고 넘어지며 배워나가고 있다. 그러니 역시, 오늘까지는 아직, 퇴사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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