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어른이 돼서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 괜찮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물었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쓰는 활동이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적을 수 없었단다. 선생님께 “지금 당장은 쓰고 싶은 게 없어요.”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가장 해보고 싶은 직업 한 가지를 쓰면 된다고 하셨단다. “화가라고 쓰긴 했는데 100% 되고 싶은 건 아니야. 사실 아직 생각 중이야.”
갑자기 고민거리가 생겼다. ‘아니, 가장 해보고 싶은 직업 한 가지조차 없다니. 우리가 너무 애를 자유분방하게 키웠나? 어떻게 자기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지? 계속 이러면 어쩌지.’ 7살 때 화가, 초등학교 때는 작가, 중학교 때 의사, 고등학교 때 기자로 직업을 바꿔 가며 계속 장래희망을 적어내고 책상 앞에 적어두고 공부했던 나로서는 걱정을 넘어 실망감까지 들었다. 아이에게 티 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일 년이 지나 2학년 새 학기를 맞았다. 학생 기초정보를 적어내야 하는데 또 문제의 ‘장래희망’ 칸이 등장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장래희망을 쓰라고 하는데, 생각해본 것 있어?” 무심한 단답이 돌아온다. “아니 없어. 왜 학교에서랑 어른들은 장래희망을 물어봐? 엄마는 장래희망이 뭔데?”
어 그러니까 내 장래희망은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어른인데, 이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절대 해서는 안 될 말, 남과 비교하는 말. “다른 친구들은 보통 직업 적어서 내지 않아?”
아이는 엄마의 실수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엄마, 그거 다 엄마아빠가 쓰라고 해서 쓴 거야. 그리고 내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대통령이 돼? 사람들이 뽑아줘야 되는 거지. 그걸 장래희망이라고 쓰는 건 좀 이상해.”
심호흡해본다. “음, 그러니까 장래희망 쓴다고 꼭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내가 뭘 좋아하고,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생각도 해보고, 노력도 하게 된다는 효과가 있어서 쓰라는 걸 거야.” 이쯤이면 잘 받아쳤어.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아주 교육적인 것 같은데?
아이의 다음 답변에 한 대 맞고 K.O 패를 당했다.
(모니터 앞에서 타자 치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일하고 집에 와서 책보고 카페도 가고 여행 다니고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건 장래희망이 아니야?”
이럴 수가. 제 엄마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 눈에 부모가 사는 모양새가 되고 싶은 무언가처럼 보였다니. 고맙고 다행이었다. 자라면서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했던 순간이 있었고, 그 마음을 차마 겉으로 드러내기 미안해 속에 감추고 죄책감과 분노 사이에서 혼자 괴롭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가 되지 못하면 '실패'로 분류하는 사회를 욕하면서 (10대 시절 나를 지탱했던 책 제목이기도 한) ‘목적이 이끄는 삶’이 의미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갈팡질팡하는 나를 바로 붙들어 세우고 다음 할 말을 고르고 골랐다.
“그래, 학교에서 쓰라는 장래희망은 사실 직업이지. 그건 그냥 하는 일이고. 장래희망은 꿈 같은 게 맞겠다. 더 재밌고 말도 안 되는 그런 거. 지금 하고 싶은 직업 없어도 하루하루 즐겁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어딘가에 가 있어.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
아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실은 스스로 하는 다짐이었다. 아이가 답한다.
“엄마, 평범한 게 가장 어려운 거라며. 뭐 부족한 거 없이 골고루 적당히 있는 게 평범한 거잖아. 그러면 편안하고 행복한 것 같은데? 나 사실 진짜 장래희망은 평범하게 사는 거야.”
이래서 애 앞에서 무슨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오늘도 너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