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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나 Jul 20. 2023

“네” 하는 법이 없는 아이

그러면 안 되는 걸까요

 아이는 항상 이런 방식으로 자기를 증명해 왔다. 그때마다 새삼스럽게 놀랐고, 망각할 다짐을 기록했지. 이 글도 그런 심정으로 적는다.


 아이가 2학년이 된 후 학부모로서 나는 초긴장 상태였다. 아이는 선생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네”하고 순응하는 캐릭터도 아니요, 규칙과 지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어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라면 해”라는 지시에 따르는 캐릭터도 아니다.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치고 궁금하면 몸부터 반응하는 아이. 네 살 때 어린이집에서부터 “얘는 제대로 혼나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티가 나요”라는 말을 들었고, 9살 첫 상담에서는 “집에서도 이래요?”라며 비아냥대는 투의 말도 들었다. 그 순간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의 어떤 특성이 있는데 내가 그걸 민감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도와주어야 할 부분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지적과 지시, 훈계로 가득 채워진 하루를 보낸 아이의 눈에 사람과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반듯한 모범생으로 컸으면 하는 바람은 진작에 없었기에 가능한 걱정이었다. 나 역시 시키는 대로 순응하지 않고, 납득하지 못한 지시는 따르지 않아 중학생 때는 뺨도 맞고 교복 치마가 찢어지도록 야구 배트로 맞기도 했던 그런 학생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선생님이 할 말이 없으니 힘을 쓰는구나. 무식하고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게 틀렸다는 생각을 할 수 없어서 엉덩이가 부어 걷지도 못하면서 “선생님 저는 반성문 못 쓰겠어요”했던 ‘미친년’이 나였다. 그런 유전자가 아이에게도 전달됐다면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출산예정일을 훌쩍 넘기고 24시간 진통 후에도 나올 기미가 없어 수술했던 그날부터. ‘시키는 대로 하는 애가 아니군’ 생각하며 낳은 애가 9살이다.

 

 그래서 아이의 캐릭터가 나에게 버겁기보다 반갑고 즐거웠다. 기억이 희미한 어린 시절을 다시 사는 기분도 들었다. 밥 먹을 때 말소리 한 번 못 내고 방문 쾅 닫았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졌던 집 분위기가 싫어서 자유롭게 키우자고 생각했다. 그래도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야 하니 규칙은 지켜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얘기는 부단히 강조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줄 안 서고, 시간 어기고, 쓰레기를 버리거나 남을 밀치고도 그냥 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이 아이는 흥미가 없거나, 납득하지 못한 일에는 집중하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차마 대놓고 말은 못 꺼냈지만 ‘ADHD’가 아닌가 의심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뇌과학 책을 탐독한 것도 그래서였다. 평균적으로 남아는 10세까지 뇌 발달 특성상 주의 집중력이 약하다는 게 오래된 공통된 연구 결과다. 일상생활,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본 아이도 그렇다. 그런데도 선생님들께 산만하다는 피드백을 종종 들었다. 그럴 때마다 “네 알겠습니다, 집에서도 잘 살펴보겠습니다, 관심 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할 뿐이었다. 어차피 아이를 그렇게 보겠다고 렌즈를 낀 사람은 설득되지 않는다.

 

 대신 아이와 대화를 해본다. 그림 그리기를 싫어한다는 피드백이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보니 선생님께서 꽃을 그리는 방법을 설명해 주면서 그대로 따라 그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둘레를 따라서 꽃잎을 동그랗게 그리고 줄기 하나, 잎 두 개씩 그리면 꽃이라고. 아이는 잎이 작고 끝이 뾰족한 개나리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건 꽃이 아니라고 하셔서 저기 밖에 있다고, 오늘도 학교 오는 길에 봤고 저는 이 꽃을 좋아해서 그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냥 칠판에 있는 대로 그리라고 하셨다는 선생님.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누구보다 나서서 말하는 것을 즐기는 아이인데 발표를 싫어한다는 피드백도 황당했다. 아이의 말을 100% 믿어서는 안 되지만 발표를 시키고는 대답하면 응 다음 사람 하고 넘어갔다고 했다. 물어보고 성의 있게 들어주지도 않으니까 노력해서 말하기 싫었다는 아이의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 “집에서는 엄마 아빠 두 명이 너 한 명과 대화하지만, 선생님은 20명 넘는 아이들의 말을 정해진 수업 시간에 들어야 하니 어려우셨을 거다”하고 설명했다.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퀴즈를 다 풀고 시간이 남아서 다른 걸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 혼이 났다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퀴즈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걸 해서 수업에 방해된다고 했다. 같은 상황, 다른 관점. 아이는 “퀴즈 풀라고 했지, 다 풀고 뭐 하지 말라고 안 했잖아. 내가 다 풀고 다른 거 하는데 그걸 보고 장난치는 애들이 잘못 아니야?”라고 설명했다. 아이는 순간 집중력을 폭발시켜서 단시간에 수행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걸 알아차렸던 이전 선생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단어 퍼즐 같은 새로운 할 것을 주셨었다. 사실 2학년이 퀴즈 다 풀고 남은 시간에 휴대전화 안 꺼내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됐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마다 생각이 다른 거겠지. 아이에게 또 설명한다. “그래, 네 말대로 잘못이 아니야. 선생님께서는 퀴즈 풀고 답을 다시 살펴보거나 가만히 있기를 기대하셨을지도 모르지. 그걸 설명 안 해주셨으니 너는 몰랐던 거고. 그래서 속상했을 거야. 이제 선생님의 규칙을 알았으니까 다음에는 지켜보는 게 어때?” 이 역시 아이가 받아들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학교는 그렇다 치고 학원이라도 소수 인원인 곳으로 옮겨야 할까, 엄마 아빠가 무엇을 놓치고 엉뚱한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지 전문 진단을 받아볼까, 별걱정으로 보낸 2학년 1학기. 그 끝 무렵에서 아이는 갑자기 달라졌다. 하룻밤 꿈같은 일일지도 모르지. 여전히 납득해야만 받아들이고 행동하고, 관심사 밖의 일에는 흥미가 없지만 적어도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피할 수 없고, 오히려 잘 해내면 뿌듯하다는 동기를 얻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 단어 공부를 스스로 하고 스티커를 받아서 다 모으면 상품으로 바꿔달라며 직접 알람까지 맞췄다. 비록 산만해서 지적은 좀 받지만, 퀴즈를 잘 풀어서 칭찬을 받으면 상쇄되는구나 느꼈던 게 아닐까 짐작만 해본다.

 

 한편으로는 성취에 대한 인정은 정말 달콤하지만, 인정에 중독될까 우려스러워서 “상품 보상이 없어도 너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품을 계속 바랄까 봐 엄마는 그게 솔직히 걱정이다”하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엄마 나도 매번 상품을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스티커 모으는 건 꼭 한번 해보고 싶어. 다 하면 진짜 뿌듯할 거 같거든? ”그래. 스티커 50개를 다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 마음을 스스로 가졌다는 거지.

 

 모범생 자녀를 둔 엄마들은 모를 거다. 솔직히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덕분에 내가 조금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기분만 느끼는지, 진짜 괜찮아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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