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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민 Jul 14. 2023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보기!

아들이 독립을 준비하다

코로나 학번으로 대학을 입학한 그는 줌 수업으로 흥미를 잃었고 혼자 삼반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재수를 밀어주기 위해 우리는 원룸 그야말로 단칸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나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나갈곳이 없었던 21살의 그는 그만의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평택에 홀로 지내시는 나의 아버지이자 그의 외할아버지 집에 가서 공부를 혼자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인생에서 1년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공대에서 문예창작이나 영화과로 진로를 전향한 그의 입시 준비는 쉽지 않았을 테고 어려웠을 테다.

그렇게 삼반수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그러나 엄마인 나로서는 더 어떻게 끌어주고 밀어줄 형편이 아니었다. 갖고 있던 목돈은 그의 교육비에 다 투자를했으며 근무하던 병원이 영업정지에 들어가 실업급여를 받으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설사 직장을 다니고 있다 해도 200만 원이 넘는 재수종합학원을 보내 줄 여력이 없었다.


1년이면 잠식될 줄 알았던 코로나는 일상의 공기처럼 그냥 우리 삶의 일부가 된 거처럼 친숙하게 곁에 있었다. 집 외에는 어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시절 학교도 계속 비대면 수업이었고 그는 복학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복학하지 않은 채 1년을 또 혼자 입시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그를 혼자 있게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그는 점점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다른 세상을 접해 볼 기회를 주고 싶어 남아공선교지에 선교사님과 연락이 닿아 일을 추진해 볼까 하는 상황에 오미크론이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참으로 어렵고 어두운 시간이었다.


해가 바뀌었지만 코로나로 거리 두기가 계속되었고, 그의 방황은 계속되었다, 부모로서 지원해주지 못하고 어쩜 그냥 방치 아닌 방치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령웠다. 경제적 능력이 있었다면 외국에 보내서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을 텐데, 지금의 상황을 딛고 일어서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터인데,, 계속 스스로를 능력 없는 엄마로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해가 바뀌었다.

그가 복학을 결심했다고 나에게 전해왔다. 듣던 중 반가운 일이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친오빠에게 SOS를 청했고 씁쓸한 감정의 부채가 남게 되었다.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아 등록금, 기숙사비,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해줄 수 있다는 것으로 나는 기뻤다.

그의 학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인문 예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에게 공학은 정을 붙일 수 없는 그러한 분야였으리라,,,

그의 쉽지 않은 학교생활이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해 주기를 바랐다.

스스로 죽을 만큼 노력을 했지만 안 되겠다는 그의 말에 나도 대학을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려놓았다. 세상엔 쉽지만 안 되는 일이 있고 어렵지만 되는 일이 있고 누구한테는 쉽지만 어떤 이에게는 어려운 천편일률적인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인생가 아니겠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란 내 자녀가 어렵고 고생스러운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일 텐데 이것 또한 내 맘대로 그의 인생을 조련하는 것일 테니 이쯤에서 그의 인생에서 참견은 그만하리라 다짐해 본다.

어렵게 1학기가 끝나갈 기말시험을 앞둔 그에게서 새로운 계획을 듣게 되었다.

반수를 해서 집 근처 학교 국문과로 입학을 하겠다!, 자신이 있고 재수학원을 반년만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간절함이 느껴졌고 진짜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1학기 수업료, 기숙사, 생활비 등등으로 대출금이 있었고, 나의 급여로 2백5십여만 원이 넘는 재수종합반을 보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도 알았으리라!

엄마가 재수학원을 보낼 형편이 아니었음을 알았으리라!

그러나 도전을 해보고 싶었으리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나니 그는 절망감과 좌절감과 원망, 분노 그러한 감정들로 그득 차 있었고 나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단짝 친구처럼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문자로 글의 한 구절을 파일로 보내왔다.

위의 내용으로 보자면 “양육 능력이 없는 부모를 이해하고 비난하지 않으며 불행한 완벽주의처럼 본의 감정이 아니라 자괴감에 빠져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놓은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다.”라는 메시지를 나에게 전달한듯해 나름 한 시름 내려놓았다.


그러나 한 시름 내려놓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나와의 대화를 거부했고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재수할 때 이후로 내가 하고 싶다는 거 지원해준 적이 없고, 나혼 자 어영부영 입시 준비하다가 다 실패하고 지원을 해주지도 못하는 엄마한테 애매하게 얹혀살면서 내 삶에 대한 책임감만 약해지고 그래서 올해 안으로 준비해서 나가 살려고"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 월세를 내고 살겠다며 내가 준비한 음식은 먹지 않았고, 내가 집에 들어가면 방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며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몰랐다.

당황하며 자책하며 자녀를 위한 기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준비해서 나가 살려고~ 도대체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일까?

엄마는 있지만 없는 것처럼 스스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그를 보면서 '준비해서 나가 살려고'라는 그의 문자의 한 구절이 풀렸다.

그는 지금 혼자 살기 위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 일련의 과정을 연습 중이구나! 그렇다면 난 그의 연습을 방해하거나 참견하지 말아야겠구나!

나와 대화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가 살 준비는 어려운 거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섭섭함도 떨쳐냈고 자녀가 아니라 한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나니 세상에 혼자인듯한 느낌, 나야말로 독립을 연습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자녀가 나와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자녀에게 혼자 사는 불쌍하고 보살펴야 하는 엄마로 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나야말로 독립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와 나의 인생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의 인생이 희극이기를 기대해 본다.


To make our life better, Bravo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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