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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Oct 18. 2023

손가락 빠는 아이

새벽 5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거실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서재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남편과 제이가 깨기 전까지 약 2시간의 자유 시간을 누린다. 아니, 누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엔 어쩐 일인지 부스스한 모습의 제이가 서재 방으로 들어와 나를 찾는다. 아직 6시밖에 안 됐는데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을 간신히 뜨고 선 나에게 폭삭 안긴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더 자라고 침대에 눕혔는데 다시 뒤따라 나온다.


“제이야, 유치원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 조금 더 자.” 

“싫어, 엄마 옆에 있을 거야. 엄마 책 읽어줘.” 


아이의 투정이 귀여워 쓰려 던 노트를 덮고 선 아이를 안아 소파에 눕힌다. 제이는 애착 인형인 북극곰을 꼭 껴안고서 검지 손가락을 쪽쪽 빨기 시작한다. 너무 졸리거나 불안할 때면 나오는 습관이다. 책장에서 동화책을 한 권 집어 들고는 아이가 다시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읽어 나간다. 손가락을 입에 담은 채 제이가 오물거리며 묻는다. 


“근데 엄마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음… 엄마가 좋아하는 일 하려고 일찍 일어나지~.”

“엄마는 나랑 노는 게 제일 좋아하는 일 아니야?”

“그럼 제이랑 노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지. 근데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일찍 일어나는 거야.”


내 말이 충분치 않았는지 여전히 손가락을 쪽쪽 거리며 등을 돌리는 듯하더니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내를 꺼낸다. 


“그치만 난 엄마랑 같이 더 누워있고 싶은데…”


안다. 그저 같이 살결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의 위안이 되는지. 나도 제이의 마음과 같았던 것 같다. 포근한 엄마 품에 안겨 함께 눈을 뜨고 일어나려 하면 도리어 품속으로 더 파고들고 싶었던 마음. 하지만 우리 엄마는 참 부지런도 해서 나한테 그런 곁을 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문득 그때의 어린 내가 제이와 겹쳐져 보였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밀려드는 불안감에 늘 손가락을 빨았던 모습. 괜찮아질 거라며 스스로 다독이려는 듯 쉴 새 없이 쪽쪽댔다.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의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제야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과 닮아지는 거 같은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


“제이야, 엄마도 제이만 할 때 할머니랑 늘 껌딱지처럼 붙어있고 싶었어. 근데 할머니는 늘 바쁘셨어. 아침에는 매일 배드민턴 치러 가고 또 일하러 가고. 그러면 하늘이 깜깜해질 때가 돼 서야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거든. 그래서 엄마도 할머니 베개를 꼭 껴안고서 제이처럼 손가락을 빨면서 할머니를 기다리곤 했었어.”

“엄마도 손가락 빨았었어?”

“응, 제이보다 더 언니 나이가 될 때까지 빨았어. 웃기지?”

“엄마는 왜 빨았어?”

“음.. 글쎄..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서? 할머니가 안 보이면 자꾸 마음이 울렁거렸거든. 그래서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손가락을 빨았던 거 같아.”

“맞아 맞아! 엄마 나도 그래! 유치원에 있을 때는 괜찮은데, 집에 와서 엄마가 안 보이면 기분이 안 좋아.”


그새 잠이 싹 달아난 제이는 같은 편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그동안 느낀 서운함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사실 엄마한테 혼나면 너무 속상해져서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빨게 돼. 아! 그리고 졸릴 때도 히-힛.”


함께 있는 시간 동안은 아이에게 모든 걸 쏟는다고 생각했는데 제이가 느끼기엔 여전히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때의 엄마도 나처럼 충분히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을까. 엄마를 향한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불안감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와 어린 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최선의 차이. 그럼에도 서운함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제이가 어린 나처럼 너무 속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할머니가 바쁜 게 서운하긴 했는데, 일하면서 늘 새로운 걸 공부하는 모습은 멋있다고 생각했어.”

“왜?”

“그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서 아름다워 보였거든. 그래서 할머니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지.”

“아~그래서 엄마도 공부하는 거야?”

“그런 셈이지. 그래서 제이한테 멋진 엄마가 되고 싶거든.”


지금의 엄마도 멋지다며 나를 꼭 껴안아 주는 아이를 품에 가득 담아본다. 마치 그때의 어린 나를 안아주듯.

어느새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힘을 내어 오늘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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