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렀고, 찬란했던 우리의 첫 기억
노릇노릇 바삭하게 그을린 피부를 따라 여름의 포말이 듬성듬성 떠오른다. 여름은 발등, 종아리, 팔뚝, 목 뒷덜미, 어디든 닿을 수 있는 곳만 있으면 새까만 표식을 아로새겼다. 온몸을 다해 여름을 채웠고,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모래 물결 마냥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흔적만 새겨둔 채 여름이 점점이 멀어져 간다. 이토록 뜨겁게 여름과 어울려 본 게 얼마 만이던가. 에어컨 아래가 최고의 휴양지라며 여름을 피하기 급급했던 지난날이 우습게도, 제이 덕분에 순정의 여름을 다시 만났다.
그녀의 첫 방학은 각종 물놀이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동네 뒷산에 있는 맨발 황톳길을 걷다가도 청량한 분수 소리에 이끌려 물놀이를 하였고, 바깥 물놀이를 하지 못하는 날에는 할머니 집 계단참에서 튜브형 수영장을 펼쳐놓고 놀았다.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시골에 갈 때면 근처 강가에 들려 몸을 담근 채 바람 속을 유영하기도.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진 않을 땐 도서관에서 뽀송한 시간을 잠시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개학 전 마지막 여름을 낚아 채기 위해선 다시 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물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닮은 제이가 물과 거리를 두는 건 애초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슬그머니 내빼려는 여름의 발목을 붙잡으려 최북단에 있는 고성으로 향한다. 찰박찰박 종아리까지 밖에 차오르지 않는 바닷물, 제이를 튜브에 태워 더더 더.. 앞으로 나아가본다. 해변가에서 제법 멀리 떨어졌는데도 155센티 밖에 안 되는 나에겐 고작 배꼽까지 밖에 안 온다. 동해 바다라고 하기엔 내가 감히 걸어서 갈 수 있는 이 거리와 두 발이 단단히 맞닿는 이 깊이가 낯설다. 구명조끼와 튜브에 의지하며 살짝살짝 파도의 리듬감을 익히는 제이도 해변가에서 멀어진 이 거리가 불편한 모양이다. 엄마 아빠의 상체가 물 밖으로 우뚝 솟아있음에도 어쩐지 해변가 근처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 보니. 제이를 데리고 다시 해변가로.. 해변가로.. 걸어가 본다. 멀찍이 떨어져서 헤엄이 아닌 두 발로 되돌아가는 기분이 참으로 기이하다. 너무나 확실히 안전한 깊이에 있는데 그 어느 때 보다 무섭기도 하다. 차라리 물이 깊어 어설프게나마 헤엄쳐 간신히 해변에 당도하는 게 더 안정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기묘하게 불안하고 눈에 빤히 보이게 안전하다. 나와 수평선 사이의 간격을 진지하게 가늠해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그 바다에서는 좀 더 내딛으면 저 끝, 수평선까지 금방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이 깃든다.
"엄마 이리 앉아봐" 모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준다는 제이의 부름에 뜨겁게 달궈진 모래사장에 몸을 뉘인다. 자그마한 손아귀에 모래를 힘껏 그러모으고선 해안까지 밀려 들어온 파도에 손가락 사이사이 새어 나가는 모래를 간신히 쥐며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완성됐다며 내민다. 있는 힘껏 모래를 움켜쥐어 보지만, 파도에 휩쓸린 모래는 속절없이 빠져나간다. 고사리 같은 조그만 손에는 당최 남아있질 않는다. 파도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노는 모습을 보니 바다 한가운데에서 느낀 불안감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몽글함이 피어오른다. 파도가 잘도 제이와 놀아준다.
계속 물속에만 있어서 그런지 습한 바닷바람에 몸이 절로 으슬으슬해진다. 바람에 스몄던 여름의 밀도가 낮아졌다. 이 바다가 이번 여름의 마지막 물놀이가 되겠구나.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해변가에 벌렁 드러누워 파도의 간지럼에 까르르 웃는 제이의 모습이 영원 같다. 나는 괜스레 서운한 마음에 파도를 타고 넘어온 골뱅이를, 연신 모래를 파내며 집요하게 비단 조개를 찾아내 통 안에 채워 넣는다. 조금이라도 두고 가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여름을 담으려 애써본다.
최대한 멀리 밀어 두었던, 만나는 순간까지도 내키지 않았던 계절이 이제는 제법 기대된다. 끈적하게 맺히는 땀도, 눈을 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햇빛도, 더위가 채워진 몸을 이끌고 물속에 풍덩 빠졌을 때 터져 나오는 청량감도, 여문 밤의 껍데기처럼 그을린 갈색빛을 갈망한다. 제이와 함께한 나의 첫여름 방학을 곱씹는다. 찬란하게 푸르른 시간을 마음에 고이 담아, 언제든 꺼내봐야지. 그리고, 다음 여름을 다시 기약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