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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Mar 15. 2020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

물건 대신 시간을 선물해보기


 얼마 전 이사를 한 친구에게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어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무것도 사주지 않아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재차 물어보니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언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자유시간이야.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바로 전날 내가 농담 삼아 남편과 나눴던 이야기와 똑같아 놀랐다.주말에 집에 오기로 하신 시어머니가 필요한 게 있으면 사오시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오셨더랬다. 아이 둘을 키우며 전투육아를 하고 있는 우리는 이 메시지를 보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요."(물론 이렇게 답을 드린 것은 아니다. 말만 했을 뿐….) 늘어지게 낮잠을 잘 시간, 영화를 볼 시간, 혼자 산책을 할 시간, 운동을 할 시간, 외식을 할 시간. 우리에게도 정말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금이라는 말을 지금처럼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육아에 지쳐 매일 하루가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매일이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하루가 아쉽다. 이렇게나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에서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돈을 주고서라도 시간을 사고 싶은 심정이다.


반대로 짐은 얼마나 넘쳐난단 말인가. 육아와 인테리어는 같은 연장선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단어다. 아무리 스몰라이프를 지향해보려고 해도 커가는 아이들의 짐은 집 안 곳곳에 차곡차곡 쌓인다. 아,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면 다행이다. 사실은 그냥 두서없이, 마구마구, 정신없이 쌓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번쯤 눈길이 가는 예쁜 인테리어 소품도 불청객에 불과하다. 안 그래도 복잡한 집을 더욱 정신없게 만드는 주범일 뿐이다.


막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했던 첫해(그러니까 작년이다), 남편이 어떤 생일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선물의 기준은 `사라지지 않는 것` `볼 때마다 선물을 준 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다른 이에게 선물을 줄 때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물건을 골랐고, 나 역시 그런 선물을 받기를 원했다. 얼마나 이러한 조건을 따져댔으면, 남편은 수 년간 내게 꽃을 선물하고 싶을 때는 화분을 사오거나 특별한 약품처리를 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꽃다발을 준비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건을 비우느라 매일같이 고생하면서 새로운 물건으로 집안을 채우는 게 영 탐탁지 않았다. 결국 내가 받기로 한 선물은 `90분 전신 마사지`와 `헤어펌`이었다. 물론 비용도 남편이 지불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로 요구한 것이다. 내가 이 선물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남편이 그 시간 동안 오롯이 아이를 돌봐야 했다. 육아의 고통을 알기에 남편에게 몹시 미안했지만, 흔쾌히 나를 위해 본인의 시간을 내어주었다는 점이 어떤 명품을 받은 것보다도 고마웠다.


`심플하게 산다` `심플한 정리법`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는 저서에서 타인에게 줄 적절한 선물로 미용실 이용권, 클리닉 케어, 청소이용권, 가정 방문 마사지 이용권 등을 추천했다. 당시 이 책을 비롯해 미니멀리스트 관련 서적들을 읽기 전이었음에도 정확히 내가 받은 생일 선물과 일치했다. 비루한 도전자인 내게도 미니멀리스트의 정신이 깃들고 있는 것인가!(하하)


그뿐만 아니라 많은 미니멀리스트들 역시 `선물`에 대한 개념을 바꿔보라고 조언한다. `멈추고 정리`의 저자 루스 수컵은 "물건이 아닌 특별한 것도 선물이 될 수 있다"며 "선물이 꼭 물건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모델 혜박은 심플라이프를 추구하기 전 가방을 무척 좋아했고, 그의 남편은 특별한 기념일마다 가방을 선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과감히 물건들을 정리한 것을 본 이후에는 꽃다발이나 평소 좋아하는 케이크를 선물로 준비한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나가거나, 간단한 초콜릿을 사오기도 하는데 가방을 선물받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단다.


시간을 선물하기 어렵다면 정성스럽게 고른 소모품도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누군가가 준 선물은 상대방의 마음이 담겨 있어 더욱 비우기가 어려웠다. 그들이 써준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산 물건만큼 내 마음에 쏙 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준 선물(앞서 말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물건들을 상대방에게 줘 왔다) 역시 그들에게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닥 마음에 들지도 않는 잡동사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호텔 숙박권이었다. 나의 소개로 결혼에 골인한 부부가 감사의 의미로 전달한 선물이었는데, 좋은 호텔에서 수영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한 후 마사지를 받으며 보낸 멋진 하루는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들이 내게 선물한 시간은 물건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마음에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불쑥 남편에게 2년 전 내 생일에 무슨 선물을 했었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역시,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어"라며 불같이 화를 내기에는 나 역시 기억을 잊었기에 머쓱했다. 화를 내는 대신 "그래, 우리 앞으로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 해주자"라고 멋드러지게 마무리했다. 아, 미니멀라이프란 이렇게 우리 가족을 화목하게 만드는구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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