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면 어느 날 문득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자각에 의해 촉발된 깨달음은 이어서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지 어림잡아 가늠해보게 만든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에게 드는 감정은 뿌듯함보다는 아마 아쉬움일 것이다. 아쉬움을 넘어 회한에 이르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산 것일까. 나의 삶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른바 중년의 위기다.
같은 중년의 위기로 통칭될 수 있는 증상이라 하더라도 남자의 증상과 여자의 증상이 다르리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대처법도 다르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서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여자에게 중년의 위기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남자인 나로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자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빛을 상정하지 않고 그림자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정의할 수 없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L’Identité)의 여주인공 샹탈은 파리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자다.
정신적 독립과 사생활을 중시하는 그녀는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남편, 시부모, 시누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혼한다. 다섯 살 짜리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이혼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나마 남았던 남편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어느 날 샹탈은 거리를 걷다가 문득 남자들이 더 이상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젊었을 때는 뭇남자들의 시선을 받았던 그녀의 미모가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연하의 남자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더 나이가 들면 그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그녀와 동거하고 있는 남자 장마르크는 그녀의 불안감을 알아차리고 그녀에게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되찾아주기 위해 익명으로 편지를 쓴다. 첫 편지는 이러했다. “나는 당신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닙니다. 당신은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
샹탈이 받은 첫 느낌은 불쾌감이다. 누군가 자신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당연한 불쾌감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두 번째 편지는 그녀의 빨간 진주 목걸이에 대한 칭찬이다. “빨간색이 당신에게 잘 어울렸어요. 당신 얼굴을 환하게 만들더군요.” 이제 샹탈은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장마르크는 편지를 계속 보낼 생각은 아니었다.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한 샹탈에게 일시적으로 기분 전환이 될 깜짝 선물을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편지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자 두 번째, 세 번째 편지를 보내게 된다.
자신을 관찰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자 샹탈은 점차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되찾아간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마르크는 자신의 편지가 발휘하는 효과에 뿌듯해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남자에게 질투를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그 결과 그녀가 낯설게 느껴진다. 마치 자신이 모르던 타인이 그녀 속에 숨어 있다가 편지를 받고 등장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 사랑했던 여자는 누구였는가 하는 혼란에 빠진다.
편지를 보낸 이가 장마르크라는 것을 알게 된 샹탈은 허탈감과 분노에 빠지고 방황하지만, 결국 자신을 세상에서 유일한 여자로 봐주는 남자는 장마르크라는 것을 깨닫고 그의 곁에 평생 머물겠다고 결심하게 되며, 장마르크 또한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간략하게 요약했지만 소설에서는 여기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다).
샹탈이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는 타인의 시선이 필요했다.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 장마르크가 곁에 있지만, 그의 시선에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녀의 여성성을 다시 일깨우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었던 것이다.
장마르크 역시 샹탈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나마 타인이 되어야 했다. (장마르크는 자신을 시라노라고 표현한다. 시라노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여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문장으로 남의 편지를 대필해주었던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쥐락을 가리킨다. 제라르 드빠르듀가 시라노 역을 맡아 <시라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든 첫인상은, 다분히 프랑스적인 감수성을 담은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들, 미혼 여성인 법무부 장관이 아이를 낳아도, 대통령이 여자를 사귀어도 직무와는 관계없는 사생활로 치부하는 나라 프랑스다운 소설이다.
하지만 또 한 편, 중년이 되어도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기 바라는 심리는 한국 여인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여자가 중년이 되면 여성성에 위기감을 느끼듯, 남자도 중년에 들어서며 성적 능력이 저하될 때 위기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신이 수컷임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이 시기에 강해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욕구를 결혼의 울타리 밖에서 해소하려 하기도 한다. 중년에 불륜이 많이 생기는 이유다.
수십 년을 같이 산 부부라 해도 남자와 여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방법은 부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아내가 여자임을, 남편이 남자임을 때때로 확인해준다면, 익숙해진 시선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눈으로 서로를 볼 수 있다면, 부부 각자가 중년에 겪는 위기, 그리고 부부로서 겪는 중년의 위기를 잘 넘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