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하기 나름

유명한 이야기 패러디

by 한 장


12시가 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정각이 지나고 나면 렉서스는 다시 티코가 될 것이고, 화려한 구찌양복은 남루한 옷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면 다시 지긋지긋한 삶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아야 한다.


‘기회는 오늘 뿐이야.’

마음이 급해졌다. 오른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왼발을 공중으로 내딛으며 클럽을 벗어났다. “헉...헉..헉헉..”

벌게진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 11시 58분 49초, 세이브. 근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

이 날을 위해 몇 달을 준비했고 리허설도 몇 번이나 했는데, 불안했다. 그러다 불현듯 한 가지가 떠올랐다. 얼른 오른쪽 구두를 벗어 클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넌 여자한테 기대서 살면 되잖아. 얼굴도 반반하겠다 적당히 벌다가 장업(장가+취업)하면 되는데 뭘 그리 취업에 목을 매?.”


여선배의 그 말이 도화선이었다. 한때는 신남성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89번째 불합격 통보를 맞이한 그 날은 선배의 말이 위로처럼 느껴졌다.


“남자가 배워서 뭐해, 집에서 애 낳고 살림하면서 편하게 살아.”


어쩌면 그렇게도 싫었던 그 말들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공부 못했던 현수도, 지석이도 부인 잘 만나 결혼 한 번 잘하니 장 땡 이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부와 형님들에게 구박을 받으며 살아왔던 서글픈 날들이 떠올랐다. 공부만 잘하면 역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형님들은 S대를 갔고 그는 K대를 갔다. 반전은 없었다. 취업을 한다 한들 로스쿨과 의전대를 들어간 형님들을 이길 수 없었다. 형님들의 시다바리를 벗어나기 위해선, ‘백마 탄 신부’ 그것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날 보던 눈빛이 내게 완전 빠진 게 분명한데...’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거물급의 그녀였다. 재력은 물론 학력, 집안, 외모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날 뒤따라왔던 것 같은데... 왜 날 안 찾지. 내 구두 한쪽을 발견 못했나.’

그녀와의 만남 이후 재벌닷컴, 대나무숲, 코리아VVIP 등의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접속했다. 그날로 며칠 후, 재벌닷컴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그 날 밤 잃어버린 인연을 찾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구두 한 쪽입니다. 강남구를 돌며 구두가 딱 맞는 그 분을 찾겠습니다.]


‘계부는 비서로 두고 형님들은 집안 전용 변호사와 의사로 부리며 살아야지. 나 무시했던 OO기업 면접관들은 해고시키고, 서류통과도 안 시켜준 그 회사는 납품을 끊을 거야.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니까, 이젠 그녀 옆에서 내가 다 쥐락펴락하며 살아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구두에 발을 넣었다. 혹여 발에 살이 찌진 않을까, 그날 이후론 밥도 먹지 않았다. 발이 구두에 닿자 주인을 알아본 구두는 발과 합체되듯 하나가 되었다. 이젠 모든 것이 변할 거란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달콤한 입맞춤을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착-”

입술 대신 그의 오른뺨에 싸대기가 날라 왔다.

“착-”

볼을 감싸기도 전에 왼뺨에도 싸대기가 날라 왔다. 어벙벙한 그를 보며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외쳤다.

“이 새끼 당장 처넣어, 네 새끼가 던진 구두에 내 얼굴에 생채기가 났잖아. 신선한 느낌에 한번 놀아볼까 따라갔더니 네가 감히 내 얼굴에 신발을 던져?”.

이전 06화로열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