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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Feb 20. 2023

읽그68. <아라의 소설>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당연히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내 책임이 분명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멀티태스킹의 유혹에 빠질 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리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려고 하면 사달이 난다. 일격을 받은 캐릭터가 생사의 기로에 서는 것처럼 집중력 게이지가 훅 떨어진다. 그런 멀티태스킹의 해악은 웬일인지 점점 두드러진다.


노트북으로 일을 하다가 잠깐 아이패드에서 음악을 바꾸려 하다가 처음 보는 유튜버의 영상을 틀고 그러다 어느새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오지 않은 메시지를 기어이 받을 때까지 딴짓을 하고 있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 돌아... 갑자기 정신을 차릴 때면 의문이 든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교해지는 건 좋지만 카페인 내성만큼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10시, 커피와 우리의 기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또 나이 탓을 하기 좋은 지점을 만나 반갑기까지 했다. 저녁 9시에 샷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단지 쓴맛에 안면이 쪼그라들었을 뿐 숙면 걱정 따위 하지 않았는데 이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쪼그라들었다. 오후 6시 이후로는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면 솔직히 오후 2시, 아니 낮 12시까지 제한을 두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가끔 다른 요인에 카페인이 더해져 된통 당할 때가 있으나 아주 가끔이므로, 아직은 좀 관대해도 괜찮다.


하루에 한 잔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왜 그런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하느냐고 친한 친구들은 대놓고 묻기도 했다. 하루에 한 잔이니까 그게 최고의 한 잔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었다. (<10시, 커피와 우리의 기회>)


아무 커피나 마신다. 그래도 저 마음을 정말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주말에 한번 먹는 디저트를 사 오려고 일부러 다른 동네로 마실 나가는 사람이라 그런가. 많이 사오지도 않을 거면서 그거 하나 사러 거기까지 가? 응.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맛있는 걸 먹어야 하니까.




원고지 5매에서 50매 정도 되는 소설들. 손바닥에 살포시 잡히는 크기. 물리적으로는 무겁거나 길지 않은 책이지만 작가의 10년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남달랐다. 10년 넘게 연락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와 비슷하다. 한 자리에서 같은 주파수에 감겨 있을 때는 10년의 무게 같은 걸 느끼지 못하지만, 그저 하하하, 호호호이지만, 돌아오는 길의 어느 순간 말캉한 과육이 사라지고 관계의 의미가 혀끝에 단단한 씨앗처럼 남는 느낌. 작가의 말대로 '부드러운 진입로'가 필요하지 않아 더 다정하기도, 더 신랄하기도 했던 작품들을 그저 유쾌하게 읽었다. 작품들을 하나로 묶고 의미를 부여할 능력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게 된 작품은 <마리, 재인, 클레어>다. 소백산 천문대에 교환연구원으로 오게 된 마리는 동료 연구원 재인과 친분을 쌓으면서 엠제이로 불리고, 마리가 새끼고양인 줄 알고 들였던 클레어는 (무럭무럭 자라 맹수가 될) 삵으로 밝혀진다.

 




"어유, 중형견 사이즈네. 아가씨 고양이 뚱뚱한가 봐?"

"뚱뚱이 아네요."

중형견이라는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뚱뚱하다는 말은 알아듣고 마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리, 재인, 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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