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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Jul 25. 2020

읽그 24. <아무튼, 언니>

원도 지음 /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한 마리의 가자미처럼 살았다. 바다 아래에 납작하게 엎드려 여기가 바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쪽으로 쏠린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그저 살아지니까 살았다.(p.7)”


나는 납작하다. 내가 배운 것은 납작한 몸으로 납작하게 사는 법이다. 바닥을 배로 쓸듯이 가까이 헤엄치며 내 자리를 익히는 법을 배웠다. 배우지 못한 것은 눈을 돌리는 방법이다. 우쭐거리며 자기 멋에 취해 헤엄치는 건 어떤 느낌인지도 몰랐다. 몸피를 부풀려 내 몫을 요구하는 법은 더더욱 배우지 못했다. 이건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한 마리 가자미다. <경찰관 속으로>를 쓴 원도 작가의 책 <아무튼, 언니>의 서문을 읽다가 깊이 공감했다. 가자미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가자미로 살아지는 순간을 견뎌야 하는 때가 온다. 내 인생인데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서글픈 시간이다.


누구나 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순 없는 노릇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만 주인공인가. 아니다. 내 이야기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외압 없이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십분 발휘하며 산다면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쉬워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뜻과는 다르게 나를 향한 기대가 촘촘히 짜여 있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는 유무언의 질책이 날아온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은 말로만 쉽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 연민에 빠질 필요는 없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있다. 무르고 약한 속내를 드러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는 사람들.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를 도와주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사람들.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데 열심인 사람들. 눈물, 콧물로 자신의 어깨가 흥건해져도 참아주는 사람들. 나와 비슷해서 참 다행인 사람들. 나와 참 달라서 다행인 사람들.


이들은 마냥 단단하고 빛나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어긋나는 사랑에 괴로워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가슴 졸이며,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혼자 꺽꺽대는 나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순간은, 그 순간의 내게는 구원자로 자리매김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그 고마운 존재는 언니들이다. 학창 시절 먼발치에서 지켜본 언니, 한때 서로의 아픔과 고민을 공유했지만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언니, 중앙경찰학교에서 만나 든든한 삶의 기둥이 되어주는 언니들, 그리고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친언니와 엄마의 언니까지. 언니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내리사랑을 베푼다.


언니들이 주는 관심과 애정은 팍팍한 삶에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마음이 우툴두툴하고 매사에 서툰 나와 너 역시 누군가에게는 언니가 되어줄 수 있다고. 고유의 불확실함에 더해 적대적인 환경을 들이미는 이 제멋대로인 세상 속에서, 때로 지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언니가 될 수 있다고.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언니의 존재가 간절해졌다. 왜 나만 언니가 없지. 하지만 이제 언니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언니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태어날 때부터 납작한 가자미였던 나는 아직도 가자미다. 하지만 그냥 가자미가 아니다. 지금 여기보다 넓은 바다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마음껏 바닷속을 누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눈이 한쪽으로 쏠려도 고개를 바삐 돌려가며 여러 방향을 보면 그만이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언니들이 옆에 있다.(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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