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가끔 유튜버 '요가소년'의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한다. 10분 분량의 모닝요가는 잠을 깨우고, 뭐라도 했다는 작은 성취감을 일깨우기 좋다. 본격적인 동작을 시작하기 전에 '요가로 시작하는 하루는 그렇지 않은 하루와 분명히 다를 거예요'라는 뉘앙스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아무튼, 산>의 저자에게는 그 분기점이 산이다. 산이 없던 시절과 산이 들어오고 난 다음의 삶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20대 중반에 처음 지리산을 만났고, 마음이 앞섰던 첫 등반 이후로 마음을 다해 산을 좋아했다. 산은 일상으로 성큼 들어와 삶의 길까지 바꾸어 놓았다. 퇴사 후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 산악 전문 잡지 기자가 됐다. 산을 더 깊숙이 느끼기 위해서였다. 덕업일치를 이루었으니 스스로 성덕이라 부를만하다.
그는 '떼산'보다는 '혼산'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여럿이 함께 오르는 것을 '떼산', 혼자 오르는 것을 '혼산'이라고 부른단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고, 호젓하게 오로지 자신과 마주하는 데서 오는 기쁨도 있다. 산에 다가가고 산을 즐기는 방법은 산을 찾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타인의 방식을 존중하고, 산에서 공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8천 미터 14좌를 벼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말 오전 누구의 간섭도 없이 둘레길을 산책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산은 모든 사람들을 품는다. 어쨌든 저자는 전자에 가까운 듯하다. 그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후 산길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의 세계에 입문했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다양한 대회에 참여하며 자신의 한계와 직면하고, 자신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뛰는 것을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늘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쉽게 오지 않는 등반 기회에서 정상을 밟지 못하고 돌아서기도 했고,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DNF(Did Not Finish), 즉 중도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저자에게 산은 유유자적하는 장소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땀과 도전이 있는 곳에 실패도 있다. 시장의 변화에 생업이 영향을 받으며 '삶과 산의 밸런스'를 고민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에 이어 산에서 도망치고 싶은 날들을 통과했다."
마지막 책장으로 달려가는 중 눈을 붙잡는 문장을 만났다. 운명처럼 산을 찾았고, 산을 운명으로 만들어버린 저자도
산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은 있을 터였다.
좋아하고, 더 알고 싶고, 그 속에서 내 유능을 증명하기 위해 바치는 시간들.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버둥거림 또한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다. 가끔 헛발질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무엇이 '유효타'인지 딱 잘라 분류할 수 있을까. 그렇게 몸과 마음을 한 가지일에 쏟다 보면, 일의 본질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한들 힘에 겨운 순간이 닥칠 것이다. 극한의 순간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게 비난받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처럼 나도 한계점까지 부딪혀보아야, 그 순간을 넘겨야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더라도.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내 것이었다. 고요하게 겸허하게 오르는 산이 좋다. 들뜬 나를 차갑게 하는 그 산이 좋다. 하지만 치열하게 맹렬하게 오르는 산도 좋다. 처진 나를 뜨겁게 하는 그 산도 좋다. 내면을 향하는 산도 좋고 바깥과 소통하는 산도 좋다. (p.147~148)
지금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싶다. 잘하는 것을 넘어 조금 더 잘하고 싶다. 조바심이나 경쟁심과는 조금 다른 이 마음을, 이 책에서 받은 건강한 에너지로 해석하고 싶다.
아, 산과도 친해지고 싶다. 천천히 하자,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했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것은 매년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들어있다. 올해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