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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Jan 31. 2021

읽그 55. <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책세상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사는 큰과일박쥐가 있다. 주둥이가 길쭉해서인지 '나는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이 박쥐들은 사실 니파 바이러스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다. 바이러스는 박쥐에게는 아무 해를 입히지 않지만, 사람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고열과 근육통, 호흡기 증상을 보이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벌목과 농경지 증대로 큰과일박쥐들이 살던 숲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97년, 인도네시아에서 사람이 지른 불이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힘입어 크게 번지면서 연기가 넓은 지역을 뒤덮었다. 박쥐들은 살 곳을 찾아 북쪽 말레이시아로 이동했다. 99년, 말레이시아 대형 돼지 농장에서 니파 바이러스 감염증이 나타나 1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치사율은 75%에 육박했다. 큰 불과 가뭄, 서식지 파괴가 질병 출현을 위한 완벽한 조합이었던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야생동물은 '질병 유발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들을 대단히 많이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창고'다. 인간이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 경계선을 지키며 그런 동물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가 좁아지면서 바이러스 창고와의 거리도 좁아졌다. 인간이 지구 곳곳으로 손을 뻗으면서 새로운 바이러스와 조우할 가능성이 커졌고, 전 지구적인 무역과 교류의 증가로 전염병의 확산세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지난 30여 년간 발견된 새로운 질병 중 75퍼센트가량이 가축이나 야생동물에게서 전파되었다. 사실 사람이 생태환경에 변화를 일으켜 전염병의 판도를 새로 짠 것은 역사적으로 거듭된 사실이다. 처음으로 미생물이 인간에게 넘어오는 다리가 마련된 것은 인간이 짐승을 가축화하기 시작했을 때다. 이후 문명 중심지간의 교류가 증가했던 것이 두 번째,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토착민들이 유럽의 질병에 희생당한 것이 세 번째 시기였다. 그리고 전례 없는 생태 변화로 새로운 전염병의 도전에 계속해서 맞닥뜨리는 지금, 우리는 네 번째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에코데믹(ecodemic)'은 바로 이렇게 인간이 초래한 생태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새로운 질병을 일컫는다. 생태를 뜻하는 eco와 전염병을 뜻하는 epidemic의 합성어다. 책에서는 광우병, 에이즈, 살모넬라 DT104, 라임병, 한타 바이러스 그리고 웨스트나일뇌염을 에코데믹의 예시로 든다.  


1960년대 말에 미국 공중위생국장은 전염병에 맞선 현대 과학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리나 세계보건기구는 1999년 보고서에서 "정복한 듯이 보였던 질병이 다시 위세를 떨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대로 오래된 전염병들이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일부는 출몰 지역을 확장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일부 지역에서 말라리아 발병률이 증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에이즈처럼 새롭게 발견되는 질병들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결핵이나 책에서 예시로 든 살모넬라 DT104처럼 바이러스나 세균이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게 되어 치료가 힘들어지는 사례도 나타난다.


인류가 새롭게 나타난, 혹은 지긋지긋하게 시달려온 질병과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 현상이 아닐까. 과거에 규명이 어려웠던 전염병을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 잘 검출해낼 수 있게 된 것이 원인은 아닐까. 저자는 이런 입장에 선을 그으며, 나무 하나하나 대신 숲을 보자고 주장한다. 우리는 하나의 전염병이 등장할 때마다 이를 개별적인 사안으로 취급하지만, 질병 발생의 전체적인 양상을 인간이 초래한 생태학적 변화와 연결 지어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약적인 농업, 산림벌채, 기후 변화, 교역 증가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염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략할 수 없는 요인들이다.




책을 읽으며 전염병의 정확한 발생 요인을 규명하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깨달았다. 처음으로 병에 걸린 사람을 찾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숙주 동물(들)을 찾고, 그렇게 하나씩 연결고리를 파악해 결국 진원지를 찾았다 한들, 몇 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바이러스가 어떻게 부자나라에 사는 인간 감염자의 몸속에 들어왔는지 하나의 딱 떨어지는 해답을 내놓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우리가 너무 복잡한 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국경을 넘나드는 조밀한 연결망 속에 있다. 축사에서 길러지는 소가 먹는 사료 한 알도, 내가 쓰는 노트북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도 대기와 다른 생명체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먹고 쓰는 것이 날씨와 모든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 연결망을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점일 것이다.


배우 문소리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남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비결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좋은 사이를 위해서는 사이를 두기. 어떤 관계이든 건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요즘 들어 많이 듣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넘어, 사람과 다른 생명체가 맺는 관계에도 결국 그런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소중할수록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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