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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Sep 20. 2020

읽그 37. <인간 이후>

마이클 테너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쌤앤파커스


BBC와 HBO가 공동 제작한 <이어즈&이어즈>라는 TV 시리즈가 있다. 카메라는 한 영국 가족의 삶을 뒤쫓는다. 미국이 중국 영토에 핵폭탄을 발사해 세계대전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은행이 줄줄이 도산하고, 생물종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불황으로 자리를 잃은 사무직 노동자들은 값싸고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으로 내몰린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주목받은 극우보수정당의 지도자는 점점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 작품은 이렇게 조금씩 나빠져가는 세상사가 어떻게 한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히 중계한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미래라서 등골이 서늘하고, 세상이 핵폭탄이나 소행성 충돌로 하루아침에 끝장나는 대신 서서히 망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작품에서 그리는 근미래가 인류의 실수와 퇴보로 점철된 것만은 아니다. 과학의 진보로 안질환을 백 퍼센트 정복하게 됐고, 사람의 몸에 칩을 이식해 별도의 기기 없이도 각종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을 육체에 심은 셈이다.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화해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장면이 대미를 장식한다. SF요소가 있는 여러 작품에서 드물지 않게 봤던 설정이다. 하지만 정신이 성공적으로 옮겨졌는지 확인하는 가족들의 긴장된 표정을 포함해 그 장면의 연출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책 <인간 이후>에서도 뇌를 업로드하는 방안의 가능성이 짧게 다뤄진다.(4부, 15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 전반적으로 <이어즈&이어즈>가 한 가족의 삶을 집중적으로 지켜보는 렌즈라면, 이 책은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미국의 과학 전문 저술가인 저자가 세계 곳곳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점점 더 자주, 많이 묻는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함이다. 인류는 멸종할까. 멸종한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멸종을 막기 위해 인류는 어떤 노력을   있을까. 질문은 가지에 가지를 치고, 저자는 기존 논문과 자료에 의지하는 대신 각 분야 전문가를 만나러 출동한다. 각 챕터마다 마주하는 풍경이 휙휙 달라진다. 그가 어떤 장소에 서서,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보다 보면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생물학자 짐 에스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은데, 우리가 영속할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지요." (p.249)


인류는 지구에서 사라질까. 19세기에서 20세기, 200여 년동안 인구는 10억에서 70억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아직도 증가 추세에 있다. 포유류 한 종의 평균 수명은 100만 년 정도라고 한다. 인간은 고작 10분의 1인 20만 년을 살아왔지만,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지구의 온도를 높이며 스스로 지속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현재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은 에라, 모르겠다, 난 어차피 떠날 테니까, 라며 배를 허겁지겁 채우고 미래 인류에게 해결을 맡기는 수렵인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사실 인류 종의 지속 가능성은 인류에게만 크나큰 관심사일 뿐이다. 지금까지 지구에는 5차례의 대량 멸종이 존재했다. 3번째였던 페름기의 멸종 규모가 가장 컸고, 바로 이전의 백악기 멸종으로는 이 땅을 호령했던 공룡이 사라졌다. 25개에 달하는 인류 종 중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지구를 거쳐간 생물종의 99%가 멸망했지만, 이전 종은 새로운 종으로 대체되고 자연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진다.


그럼 인간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생물종이 그랬듯 이유는 복합적일 거라고 책은 진단한다. 저자가 지목한 멸종 시나리오의 주연은 토양, 항생제 내성, 해양의 변화, 이 세 가지다. <침묵의 봄>을 써서 DDT의 위험성을 알렸던 레이첼 카슨 또한 어류가 줄어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인류는 "1950년보다 지금 4배나 더 많이 생선을 먹고 있다." 남획과 지구 온난화는 바다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바닷물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높아지면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도 등장한다. 고래들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것 역시 그중 한 가지다.  


산업 혁명 이전에 비해 지금의 바다는 적어도 12퍼센트 소리를 덜 흡수한다. 2050년이면 이 비율이 70퍼센트까지 치솟을 것이다. 바다가 점점 더 시끄러워질수록 고래의 노랫소리는 점점 더 묻힐 것이다. (p.279)


우리는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을 피하지 못할까. 다가올 대량 멸종은 곧 '인간세'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책은 앞서 대량 멸종 이후 자연이 어떻게 스스로 회복했으며, 회복에 얼마큼의 시간이 걸렸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3부의 내용을 통해 인간이 사라진다면 이후의 지구는 어떻게 될지, 어떤 종이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지 짐작해볼 수 있다. 4부에서는 인간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첫째,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환경에 미친 피해를 만회하려고 하거나 둘째, 기술발전에 힘입은 ‘대안’으로 눈을 돌린다. 생태계 작동을 위해 포식동물을 야생으로 보내는 것, 화성 이주 계획, 앞서 썼던 '마음의 업로드' 등이 그런 계획에 속한다.

 

계획이 어떻게 실행되고, 어떻게 어그러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다 알 수 없다. 다만,


자연은 살아남을 것이다. 생명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비록 다른 형태들, 다른 종들로서 살아가긴 하겠지만. 생태계는 예전에 그러했듯이, 언젠가 다시 회복되고 번성할 것이다. 아마 다른 규칙들에 따라 다른 참가자들이 활약을 하겠지만 말이다.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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