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8. 11주 차
오늘 진료는 짧게 끝났다. 약 4-5개월을 한 달에 세 번 이상 만나며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활짝 웃는 걸 처음 봤다. 드디어 길이 조금 보이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둥글게 휘어지는 눈이 날 안심하게 했다. 말하고 싶었다. 그 길을 찾아 너무 오래 헤맨 것 같다고. 그리고 2주 차였나, 처음 약을 복용해보고 '사람 사는 것 같다'라고 말하던 내게 '그거면 된 거다'라고 대답했던 의사 선생님이 오늘 다시 물었다. 병원을 다니며 조금 더 잘 살아지는 것 같냐고. 난 여전히 글을 쓰며 눈물을 흘리고 여전히 간헐적으로 잠을 못 자지만 그래도 병원을 다니기 전처럼 사는 게 너무 피곤해 죽을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때와 똑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그거면 된 거라고.
이번 글은 책에 대한 감상과 진료일지를 함께 하고자 한다. 이도우 작가의 잠옷을 입으렴은 둘녕과 수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둘 중 수안은 어렸을 때부터 불면증을 앓는데 그 모습이 나와 너무 닮아서, 하는 말이 너무 내가 하는 이야기 같아서 책을 읽다가도 흠칫하고 놀랄 때가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까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자 한다. 다만, 수안이 불면증을 앓으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서술되어있을 때 날 더 마음 아프게 했던 건 둘녕이었다. 잠에 들지 못하는 수안과 그런 수안이 신경 쓰여 마음 아파하는 둘녕. 나는 언제나 그게 두려웠다. 내가 아파서, 힘들어서, 괴로워서 그 고통이 남에게 전염될까 항상 무서웠다. 그래서 잠이 들지 않는 밤이면 그저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다.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다섯 시간이고... 내가 잠들지 못한다는 걸 누군가 알아차린다면 그 역시 괴로워질 것임을 알기에.
가끔은 내가 조금 더 일찍 병원을 다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해묵어 썩어가는 검은 마음도 없고 금방 치료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간대도 병원은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면 가지 못하던가.
이 부분은 어리석었던 나를 채찍질하는 일에 더욱 열중하게 했다. 나 역시 이런 생각으로 10년이 넘게 나를 방치했다. 나는 내가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헤매던 길은 의사 선생님도 길을 찾지 못해 4개월을 넘게 찾아다녀야 했던 복잡한 미로였고 나는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첫 시작은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조용하지만 지독하게 사춘기를 앓았다. 부모님은 내가 사춘기를 지내온 줄도 몰랐다고 한다. 나는 지금에야 나는 그때부터 좀 이상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사춘기면 사춘기답게 좀 반항도 하고 속을 썩이기도 해야 하는데 난 그게 없었다. 책만 읽었고 일탈을 하려다가도 금세 성적을 올리겠다며 방향을 순식간에 바꿨다. 그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면증은 고등학교 때 절정에 달해 수능을 앞두고는 한 달 내내 깊은 잠을 못 자는 수준이 되었다. 울면서 담임 선생님께 머리가 너무 아파 도저히 수업을 들을 수가 없다고 말을 하던 내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 나는 수업을 듣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냥 간단히 말하고 마음 편하게 쉬면 좋았을걸. 그냥 그때의 내가 조금 안쓰럽다. 아파도 수업을 빠지면 의지박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몸에 자리를 잡은 불면증은 영영 사라지지 않았고 없다가도 생기고 생겼다가도 잠깐 휴가를 떠나곤 했다.
나의 추측으로 내 불면의 원인은 아주 옛날,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으려나. 참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7-8살 시절,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분명한 기억들이 있다. 아마 그 기억 중 하나가 나를 불면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그 기억은 입 밖으로 꺼내기가, 손으로 쓰기가 아직은 힘들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 괜찮아졌을 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주는 울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웃었다. 긍정적인 신호다. 지금도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데 계속해서 하는 말이지만, 이건 해소의 눈물이다. 언젠가는 몸에 쌓여있던 눈물이 모두 흘러 소진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