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모 Dec 05. 2017

12월, 실패하지 않았다.

12월주의자들, 김이강, 문학동네, 2012


오늘은 가을이 조금 지겨워요 시작한 지 얼마도 안 되어 벌써 지겨워요 멍하게 앉아서 뚫어지게 쳐다봐요 오늘은 몸이 지치고 피로해요 항상 지치고 피로하지만 오늘은 특히 지쳐요 버스에서 잠도 잤는데 도대체 모르겠어요


12월주의자들 , 김이강, 문학동네, 2012



12월은 누구나 약간의 우울을 안고 견디는 달이다. 겨울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듬해 1월이나 2월을 생각하면 같은 겨울임에도 12월에만 느끼는 우울함이 있다. 새로운 한 해를 목전에 두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우울함으로 발현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 12월은 유난히 우울한 달이었다.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했던 지난날들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지는 때 말이다. 한 해동안 이뤘던 것은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실패한 일들이 아쉽고 미련이 남는 시간이 한 달 내내 지속된다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연말이면 크리스마스나 송년회, 신년회 등 각종 기념일과 행사를 준비하느라 들떠있는데 혼자만 관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는 내게 한 해를 떠나보내며 기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후련하게 떠나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은 1년 간 무언가를 이뤄온 사람만의 특권이고 필자처럼 시간을 허비한 사람에게는 지난 시간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이 최선처럼 느껴지던 날들 말이다.


돌이켜보면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왔다. 실패한 일들을 본래 보더 과장해 담아두고, 성공한 일들은 우연한 성과로 치부하며, 12월은 매년 '올해는 얼마나 실패했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내게 연말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었을지 모르는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실패하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또 두려워한다. 다음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 뿐이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두 번 다시는 할 수 없다고 믿었다. 실패에 집착했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얼마나 성취했는가를 묻는다면, 없다고 대답한다. 도전하지 않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게 새로운 시작이나 도전은 성과를 내야 하는 일에 불과했다. 현재에 영원히 안주하고 싶었다.


얼마 전 좋아하던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고민하다, 수첩에 자신이 실패한 경험을 적어왔다고 입을 연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대학 시절을 거슬러, 자신이 얼마나 소심하고 우울하고 또 실패한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못 미덥고 의심스럽기만 해서 실패한 일들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년 반복됐던 12월을 생각했다. 1년의 실패를 곱씹으며 후회하고 울다 잠들던 매일 밤을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실패한 일은 몇 없었을지 모른다. 앞으로 남은 시간에 영향을 끼칠 만큼 '실패'한 일들이 얼마나 됐을까. 며칠이면 털어낼 수 없는 사소한 실수를 실패로 간주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운 것은 아닐까.


그날 우리에게 실패한 경험을 들려줬던 작가는 스스로가 싫어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내가 나라는 게 너무 싫었다고 덧붙였다.


실수를 온건하게 지나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저지른 일이었기 때문이다. 잘 해도 우연히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실수까지 한다면 또 얼마나 미운 일이었을까.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울함과 자기비하로 한 해를 버텨온 사람이었다. 12월의 마음가짐은 언제나 '올해도 실패했다'와 '내년에는 덜 실패해야겠다'였다. 내게 다음 한 해도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없었다. 다만 지난해보다는 덜 슬프고, 덜 실패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 안을 돌보지 않고 몰아세우기 바빴던 시간들을 인식한 후 처음 맞는 12월이다. 지금까지의 소견으로는,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실수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실수를 과장해 실패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사실은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몰아세웠을 뿐,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썩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연말까지는 많지 않은 시간이 남았다. 이 시간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는 단 한 가지다. 올해도, 내가 실패하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것. 더 나아가, '실패해도 된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12월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얌전히' 있으면, 정말 괜찮아지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