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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다반사 Apr 18. 2020

서툰 선물 속, 마음 가득한 선물

만추(Late Autumn, 201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국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
이동진 평론가


'사랑'이 '시간을 선물하는' 행위이고, 그 행위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애나(탕웨이)'를 온전히 사랑한 사람은 '훈(현빈)'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입니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가족도 아니고, 오랜만에 만난 옛 애인 '왕징(김준성)'도 아닌, 우연히 만난 '훈'이라뇨. 더 아이러니한 것은 '애나'에게 '시간을 선물'하는데 익숙할 법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을 파는데' 익숙한 '훈'이 시간을 선물했다는 것입니다. 그들(가족, '왕징') 각자는 '시간을 선물했다'라고 여기겠지만, 왜 그들의 선물이 유독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7년 만에 '애나'를 맞이하는 가족들. 인사를 나눈 뒤, 슬쩍 내미는 서류. '애나'에게 허락된 3일간의 짧은 휴가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한 것이 아닌 돈을 위해서였습니다. 그 누구도 '애나'가 짊어진 7년이란 시간을,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애나'를, 위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왕징'이 위로를 전하려 하지만, 그가 전해야 하는 것은 '애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입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변명만 늘어놓을 뿐입니다. '말'이라는 화려함으로 꾸려진 선물에는 '애나'를 향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가슴 한 켠의 빈 공간을 조금이라도 채우고 싶어 밖을 나서지만 7년이란 시간의 빈 공간은 너무도 넓게 느껴집니다.


옷을 사도, 귀걸이를 해도, 비어있기만 하다


우연찮게 '훈'을 다시 만나게 된 '애나'. '애나'의 도발 아닌 도발에 이들은 호텔로 향합니다. 그러나 '훈'을 밀치는 '애나'. 한동안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던 '훈'. 갑작스레 '할인'을 해주겠다며 '애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시간을 팔기만 했던 '훈'이 시간을 선물하는 순간입니다. 그가 전한 시간에는 가족들이, '왕징'이 전한 시간에 없는, '애나'를 향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훈'의 선물을 열어 본 '애나'. 그 선물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애나' 스스로를 되찾게 해 주었습니다. 비록 '훈'이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이지만, 엉뚱한 포크에다 화풀이했지만, 그녀를 짓누르고 있던 7년의 시간을 내려놓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충분했습니다. 공허한 말이 아닌, 마음 가득한 시간이란 선물이, 시애틀 안갯속에 가려진 마음에 햇살을 비춰주었습니다.


안개 밖에서 '훈'을 기다리는 '애나'. '애나'는 이제 '훈'을 향한 선물을 조금씩 꾸려갑니다. 서툰 인사, 어색한 미소, 그리고 기다림으로 꾸려진 그녀의 선물. '애나'의 선물을 열어보는 순간, 시간의 무게는 가벼워질 것이고 '훈'의 마음엔 안개 대신 햇살이 비칠 것입니다. '애나'를 위한 시간이 그랬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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