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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 없는 사람 Oct 28. 2020

'사빠죄아' 이태오의 대선배 정운오

애인(MBC, 1996)

불륜을 다룬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불륜을 정면으로, 그것도 유부남과 유부녀의 불륜을 사랑으로 다룬 드라마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불륜 드라마 중 가장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를 꼽자면 단연 <애인>이다. 1996년 방영한 <애인>은 ‘아름다운 불륜’이란 말을 유행시키며 그야말로 사회적 현상을 일으키며 뉴스에까지 등장한 작품. 당시 중학생이던 나도 기웃기웃 드라마를 보고 OST였던 ‘I.O.U’도 즐겨 들었지만 사실 그 세세한 감정선까지 이해할 순 없었다. 하긴, 그 이전에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으며 눈물 흘리던 엄마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좀 주책스러운 거 아닌가’ 생각했던 시니컬한 10대였으니까.


유부남, 유부녀의 떨림을 포착하며 '아름다운 불륜'이란 말을 낳은 <애인>


<애인>은 남 보기에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남자 정운오(유동근)와 윤여경(황신혜)가 우연히 놀이공원에서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운오의 아들들이 사고로 여경의 바지에 아이스크림을 묻히면서 두 사람이 마주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운오는 미인인 여경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우연히 다시 마주친 둘. 재미난 건 누가 봐도 건실한 남자인 운오가 여경이 미혼인 줄 알고 사과를 빙자한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그녀가 유부녀임을 알고 대놓고 실망한다는 거다(더 재미난 건, 대놓고 실망하는 운오를 보고 오히려 여경은 그를 순수하다고 느낀다).


여경이 미혼인 줄 알았던 운오는 그녀가 기혼임에 대놓고 실망하지만, 이내 대화를 통해서 두 사람이 제법 공통점이 있고 잘 통한다는 걸 깨닫는다. 하긴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운오와 샌프란시스코에 이민 간 친오빠가 있는 여경, 엇비슷한 나이대에 각자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저마다의 매력을 지닌 운오와 여경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리라.

게다가 둘은 나름의 공허함이 있다. 안정되었지만 더 이상 설렘은 없는 30대 중후반이라는 나이에다가, 여경은 성공이란 목표에 매몰돼 가정을 등한시하는 남편 우혁(김병세) 때문에 일상이 매사 외로운 터다. 운오 또한 자타공인 백점 만점 아내 명애(이응경)가 있지만 짜르르 통하는 연인의 느낌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돌덩이가 아닌 이상 유부남이든, 유부녀든 사회에서 마주하는 이성(異性)에게 찰나의 설렘을 느낄 수 있다. 내 주변의 결혼한 지인들도 가끔씩 그런 말들을 한다. “일하면서 만난 누가 생긋 웃어주는데, 심장이 찌르르 떨리더라?” “거래처 대리랑 커피 마시면서 미팅하는데 턱선이 왜 이렇게 섹시하니? 나도 모르게 화장실 가서 화장을 고치게 되더라고.” 이제는 드물어진 ‘남사친’들도 마찬가지다. 딱히 섹슈얼한 감정을 원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내가 친정 갔다며 술이나 한잔 하자며 연락 오는 경험, 이 나이대에 드물지 않으리라. 운오와 여경 또한 처음엔 딱 그 정도 설렘이었을 수 있다. 그걸 지속하고 감정을 진행해서 문제였지.


누가 뭐래도 우리 사랑은 솔직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자신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더니, 운오 또한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사랑에 주저하는 여경에게 이렇게 말한다.

“길 막고 사람들한테 한 번 물어봅시다. 자기 자신들한테 솔직해 본 적 있냐고 한 번 물어봅시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 존중해 본 적 있냐고 한 번 물어봐요. 아무도 우리한테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 무엇이 죄냐는 것일 테다(그리고 20여 년 뒤, 운오의 후배뻘 되는 <부부의 세계> 이태오가 등장해 외친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가 아닌 오로지 나에게 솔직하고자 하는 감정, 물론 그것을 죄라고 비난하기엔 가혹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누구의 죄란 말인가? 흔한 말로, ‘너무 늦게 만난 죄’?


나는 수십 년간 한 사람과 독점적인 애정관계를 지속하는 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은 애정을 넘어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 계약관계이기에 쉽게 파탄내면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사자 간의 기본적인 애정과 신뢰가 파탄났다면, 다른 책임과 의무 때문에 그걸 지속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단,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모든 책임과 비난을 감당한다면 말이다.


내가 차려준 밥 먹고 내가 준비한 옷 입고 딴 여자를 만나?


남자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는 이 가을에, <애인>을 다시 보고 나서 ‘아름다운 불륜’이란 말이 얼마나 턱없는 것이었나 생각하는 건 그 때문이다. 운오와 여경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운오는 여경에 빠져 설레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내 명애의 살뜰한 보살핌 아래 안온한 일상을 지냈다. 여경과의 관계를 눈치챈 명애가 운오를 제자리로 되돌리려 노력하다 되지 않자 결국 쫓아낼 때도 자못 억울한 느낌으로 명애를 설득하려 든다(대체 무슨 말로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비난은 외면하면서 사랑만 쫓으면 그건 곤란하지 말입니다.


더 한숨이 나오는 건, 이혼을 결심한 운오가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로 하고 여경에게도 함께 떠나자고 말했으면서, 떠나기 직전 명애가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주저앉는 거다. 여경 또한 사회적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남편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떠나지 않고. 이혼을 결심하고 나를 찾아 떠나겠다던 사람들이라면 오로지 그것에 몰두해야지, 돌아보긴 왜 또 돌아보냐고.


아름다운 불륜은 없다. 선택을 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바꿔야지.


심지어 드라마 마지막인 1년 뒤, 처음 만났던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라. 뒤돌아서는 여경의 머리에는 예전 운오가 사준 머리핀이 꽃혀 있다. 그걸 보는 운오는 또 아련한 표정이 되고. 아오, 그렇게 서로 아련하면서 각자 배우자에게 껍데기로만 있을 거면 애초에 시작을 왜 했으며,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그건 책임이 아니라 자기 만족 아닌가.


20여 년 뒤의 내 감상과는 별개로, 당시 <애인>은 OST로 수록된 독일 혼성 그룹 캐리 & 론의 ‘I.O.U’와 스콧 맥켄지의 ‘San Francisco’의 인기와 함께 수많은 기혼남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익숙한 관계가 아닌, 새로운 사람과 사이에 피어나는 설렘은 마약 같은 것이라지. 그래도, ‘아름다운 불륜’이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며 아름다운 사랑으로 바꾼다면 몰라도.

아, 기혼남녀에게 ‘친구 이상 육체적 애인 이하의 관계가 가능할까?’라고 물었더니 “그런 거 없어, 한순간에 육체적 관계로 발전한다고. 빼박이여”라는 대답이 이구동성으로 돌아왔다. 그때도 모두들 <애인>을 보면서 설레긴 했지만 '아름다운 불륜'이란 말이 판타지라는 건 인지했던 모양이다.



*이 글은 2019년 10월 <비즈한국>에 게재했던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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