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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May 10. 2022

22. 병원에서 출산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출산은 부부가 함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이다.   

미국에서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후, 남편은 병원에서 주관하는 출산교육(Childbirth Education)을 신청했다. 부부가 함께 듣는 교육으로 출산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함께 호흡법, 운동법, 산후 신생아 돌봄까지 주 1회 3시간씩, 총 4주에 걸쳐 알려주는 커플 당 70달러짜리 프로그램이었다. 꼭 필요한 내용이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처음에는 등록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형님 부부의 추천도 있었고, 남편도 자신이 통역을 하거나 수업을 녹음해 오면 괜찮을 거라고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5월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이번 주에 첫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수업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이뤄졌다. 강의실에는 우리까지 해서 총 5 커플이 있었다. 강사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녀는 무려 4번의 출산 경험으로 5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1번은 쌍둥이었다) 자신을 소개했다. 지금은 그 경험을 살려 병원에서 출산 전문 교육 강사를 하고 있으니, 실전과 이론을 두루 갖춘 슈퍼 맘이었다. 나로서는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계신 분처럼 느껴졌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각 커플들이 잠시 자신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5개의 질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 예정일은 언제인지, 아기의 성별을 알고 있는지, 혹시 결정된 아이 이름은 있는지, 임신을 하면서 가장 흥분되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등이었다. 들어보니 나와 예정일이 비슷한 산모도 있었고, 올해 9월로 시간이 넉넉한 분도 계셨다. 성별을 모르는 분도 계셨는데, 자신들은 끝까지 확인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마지막에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다나. 가장 흥분되었던 순간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초음파에서 아이를 확인했을 때를 꼽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그때가 떠올랐다. 5주 차, 참 이르기도 했다. 어느 날 임신 테스트기에서 옅은 두 줄을 확인하고 놀란 마음에 남편과 근처 산부인과로 갔다. 그곳에서 뱃속에 1cm도 안 되는 작고 동그란 아기 방을 만든 찰떡이를 만났다. 3주 뒤 다시 병원을 찾아가 짧은 팔다리를 꼬물거리는 찰떡이의 8주 차 심장소리를 들었고, 우린 울컥했다. 8주 차를 넘기지 못하고 텅 빈 방 속에서 아기 씨의 모습으로 아무 소리도 들려줄 수 없었던 첫 번째 아이, 선물이가 떠올라서였다. 찰떡이는 다행히 그 기간을 넘어 무럭무럭 잘 자라줬다. 34주가 되어가는 지금은 뱃속을 마음껏 유영하며 꿀렁거리고 있다. 건강한 반응에 안심이 된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첫날 수업의 목적은 전반적인 출산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교육은 대부분 영상자료들을 통해 이뤄졌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여러 형태의 부부들(이성부부, 동성부부 등)이 자신의 임신, 출산 경험을 가감 없이 소개하고, 의사들은 꼭 필요한 내용들을 짚어주어 자연스럽게 핵심 내용들을 익힐 수 있었다. 나는 설명을 계속 들으며 흐름을 탔고, 남편은 틈틈이 내용을 요약해주었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지금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감이 왔다. 그동안 불안과 두려움에 여러 유튜브 채널과 맘 카페 글들을 보기도 했고, 친구와 동료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조언들을 잘 들은 덕분인 것 같았다. 어느 임산부가 그렇지 않겠는가? 곧 자기 몸에서 벌어질 낯선 상황 앞에서 말이다.


교육 내용 중에 하나. 플레이도우로 자궁경부가 열리는 과정을 이해하고 직접 만들어 본다. 10cm 열리는 것이 어느 만큼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데, 나는 한 번에 맞췄다.^^

그런 측면에서 나에게 이번 교육은 남편과 함께 듣는다는 것에  의미가 컸다. 남편을 출산과 육아에 온전히 참여할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남편 역시 부지런히 자료를 찾아보며   있는 일들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달마다, 주수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태를 몸으로 겪어내는  만큼  변화를 실감하는 것은 아닌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랬던  같다. 미국에서 남편과 솔직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서울에서 병원에 다닐  사실 자신은 상황과 대화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낯선 한국 병원 시스템과 상대적으로 짧은 의사와의 면담 시간(한국 주치의 선생님은 매번 추가 질문은 없는지 확인하시며 시간을 많이 써주셨던 분이 셨음에도)  등이 그에게 부담을 주었던  같다. 그런 상황에서는 산모이고 병원문화도 익숙한 내가 주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과는 달리 그는 계속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같고. 출산을 친정에 가서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같았다. 노련한 친정 부모님 혹은  가족들이 나서서 남편을 도와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일이 편안하게 진행되는 것과는 별개로 남편은 다시 친정 부모님을 돕는 보조자로 자신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우리 부부는 친정과 시댁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 둘이서 육아를 책임지고 함께 분담해야 한다. 내가 복직을 하면 남편이, 남편이 바쁜 날에는 내가 이렇게 서로의 공석을 메우며 육아 리더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시작부터 같이 준비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나는 남편이 모든 질문 사항들을 모아 정리하고 의사에게 섬세하게 의견을 구하는 모습을 봤다. 두드러기나 태동의 변화, 배의 당김, 호르몬 수치 결과 등등 내 몸의 상태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의사에게 메일을 쓰고 답을 확인하는 것도 남편이었다. 때로 임신으로 몸이 너무 힘들 때에는 덤덤하고 편안해 보이는 남편에게 괜히 심술이 나고 억울한 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달해주고, 매번 상황을 확인하는 남편의 수고에 감동과 감사함이 먼저 올라온다. 과정이 계속 공유되는 이 상황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함께 하고 있다는 든든함도 느꼈다. 그래서 마음이 점점 굳어졌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교육은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었다. 부단히 분위기를 살리려 노력하는 강사에 비해 수강 부부들은 좀 지쳐 보였다. 일이 끝나고 바로 왔을 것이 분명하니 그럴 수밖에. 우리 앞에 앉은 부부의 남편은 고개를 연신 털며 몰려오는 피로를 몰아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중간중간 볼펜으로 중요한 내용들은 적기도 하고, 다른 부부들은 다 산모들이 얘기하는데 우리 부부 대표로 자기가 발표를 하기도 하고, 나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어 강사에게 질문하기도 하는 그의 최선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와, 아기 낳는 거, 드라마랑 영화랑 완전히 다르네. 덜덜 떠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 무섭더라”. 나 역시 가진통부터 흐느적거리고, 진진통에서 괴로워하고, 마지막 힘주기를 할 때 마치 온몸에 얼음물을 퍼부은 듯, 불수의적으로 아랫입술을 연신 파르르 떠는 고령 산모를 보고는 정신이 핑 돌고 어지러웠다. 그래도 애써 담담한 척, 남편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그게 내가 겪을 일이야. 그러니까 오빠가 옆에서 잘 도와줘야 돼. 알았지?!!” 남편 얼굴에 ‘으이고, 또 그런다’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오늘 그가 확실히 알았으니 됐다 싶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모든 출산 이야기들은 닮아 있지만 또한 각각 다르고 고유하다. 우리 부부도 올 초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다행히 누구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이 경험 속 주인공이 되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큰 힘을 준다. 특별하고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 둘 모두, 아니, 셋,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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