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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Oct 18. 2021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나요?

chapter 7. 약간의 신경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이 나아지면서 이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더 이상 너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니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그래서 몇 달 남지 않은 한 자격증 시험을 접수하고 준비해봤으나 늘 하기 싫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한데 촉박한 걸 알수록 자꾸만 딴짓만 하고 싶고 초조해서 더 일이 잘 되지 않곤 했다. 이런 내 모습을 털어놓자 주치의 선생님은 의외로 쿨한 답을 내놓았다.

“이걸 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어요.”

“본인이 이미 답했잖아요. 하기 싫다고.”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면 되나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하기 싫다는 것은 아직 때가 안 된 것이고 더 쉬어야 하는 거란 뜻이에요.”

그렇지만 지금은 힘들어서  했다는  알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시간 많았는데 그때는 대체 뭐했지? 싶어서 자책할 것 같아요.”

“그때는 힘을 비축했지.”                                

미래의 나 대신 답한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충분히 쉬면서 힘을 비축하면 느닷없이 하고 싶어지기도 해요.”

“그런데 게으름 때문인지 정말로 제가 아파서 인지 구분이 안 가는 걸요.”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모르는 것은 아직 안 괜찮다는 거예요. 정말로 괜찮으면 알게 돼요.”

“저 이러다 내년까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내년에 뭘 할지는 내년에 생각하면 돼요.”


선생님과의 대화를 나누고 며칠  할까 말까 망설이던 자격증 시험은 결국 포기하게 됐다. 마치 누군가 그만두라고 하기 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쏠랑 그만둬버린 것이다. 게으름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조급하게 서둘렀던 시험 준비를 벗어버리니 한결 가벼워졌다.


하기 싫으면  하면 된다니.  번도 그렇게 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새삼 놀라웠다. 선생님 말대로 내가 괜찮은   괜찮은  아직  모르겠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우울증을 겪은 후 죽어라 애쓰지 아도 괜찮은 삶을 살기로 결심했으니 이것도 훈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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